
'해고는 살인'이라는 노동조합의 구호는 단지 정치적 수사에 머물지 않는다. 일자리를 잃은 후 사망 확률이 50~100% 상승하고, 평균수명이 1~1.5년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만 봐도 그렇다.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 공동체 전체에 비참함의 씨앗을 뿌려 증오 범죄도 키운다. 좋은 일자리 보장이 왜 그렇게나 중요한지, 인간의 노동을 그저 '상품'으로 볼 수 있는지 노동경제학자인 저자가 문제의식을 갖는 지점이다.
서울대 출신으로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에 재직 중인 저자는 "일자리는 시장에 의해 조직되지만 시장은 종종 실패한다"며 "갈등을 해결하는 정책적·제도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짚는다. 특히 노동시장은 태생적으로 긴장을 내포한다. 노동과 임금의 거래가 삶의 존속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일할 권리가 있다면, 사회와 기업엔 좋은 일자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여기에서 나온다.
좋은 일자리는 시장 논리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다. 그냥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좋은 일자리는 줄고, 산업재해 위험이 크거나 임금 수준이 낮은 나쁜 일자리가 과도하게 공급될 우려가 있다.
경제정책을 성장, 물가, 금융 안정 등의 시장 개념으로만 접근하면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위해 어느 정도의 실업은 감수해야 한다'거나 '임금을 올리면 물가가 올라간다'는 주장까지 수용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물가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기업의 이윤 증가"라며 "미국의 경우 최고경영자의 연봉이 현재 평균 임금의 300배에 달한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일자리 가치의 재정립을 위해 '기여적 정의'가 중요하다고 제안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금전적 지원이나 분배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존중받으며 사회적 생산 과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행위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의미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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