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산 LNG 수입 확대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에너지 안보 강화다. 중동·아시아·호주 등 전통적 도입국에서 '셰일혁명' 이후 LNG 시장의 주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미국으로 도입처를 다변화함으로써 가스물량 확보 관련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됐다. 또한 미국의 통상압력을 줄일 수도 있게 됐다. 미국 정부는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에 '연간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을 포함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대미 무역흑자가 179억달러로 줄어 이 기준에서 벗어나게 됐는데, 이에는 LNG 수입액 증가 10억달러가 기여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산 LNG가 전통적 공급국들의 '갑질'적 거래 관행을 깨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 계약은 기간이 15년 이상인 장기계약이 대세였으며 수입국에 불리한 목적지 제한이나 의무인수(Take-or-pay), 이익분배 등 거래 조건들을 담고 있다. LNG 인수기지를 특정 목적지로 한정하거나 매수자가 국내 수요 감소 등으로 계약물량보다 적게 가스를 인수할 경우 인수 부족분의 대금 전액을 지불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또한 매수자가 제3자에게 LNG를 재판매해 이익을 냈을 때 이익 일부를 판매자에게 의무적으로 분배하도록 돼 있다.
미국산 LNG는 이러한 조건에서 자유롭다. 목적지를 지정하지 않으며, 가격이 미국 천연가스 시장 가격인 헨리허브(Henry Hub) 가격에 연동되기 때문에 국제유가에 연동되는 장기계약 가격에 비해 유리하다. 이번 계약에서 가스공사가 체결한 가격은 종전의 70% 수준이다.
이러한 LNG 시장 변혁기에 유럽연합(EU)과 일본은 기존 불공정 거래 관행을 깨기 위해 나섰다. 유럽위원회(EC)는 2000년대 들어 수년 간격으로 러시아 가스프롬, 나이지리아 NLNG, 알제리 소나트래치(Sonatrach) 등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유럽 독점금지법에 반하는 영토 제한 규정을 철폐하고 가스의 자유로운 역내 흐름을 보장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작년 6월부터는 유럽경제지역(EEA) 수입업자들과 카타르석유(Qatar Petroleum) 간 LNG 매매 계약에 규정돼 있는 목적지 조항 조사에 나섰다.
일본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 6월, LNG 매매계약에서의 목적지 제한이나 이익분배 조항 등이 모두 독점금지법상 문제가 될 우려가 강하며, 공급자가 초기 투자비를 회수한 이후에도 의무인수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독점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 3위 LNG 수입국인 우리나라도 LNG 시장 구조 변화와 계약 조건의 유연화 조류에 주목해 국내 수입업체의 LNG 매매계약 실태를 파악하고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는 조건에 대한 개선안을 강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EU, 일본 등과 공조체제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부가 해야 할 몫이다.
[온기운 객원논설위원·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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