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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설탕공장을 품은 힙한 개발 도시재생의 길을 묻자 브루클린이 답했다

뉴욕 브루클린의 변화
젠트리피케이션과 부동산 투자

  • 기사입력:2025.08.20 17:15:54
  • 최종수정:2025-08-21 18: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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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루클린 도미노공원에 위치한 설탕 정제 공장(가운데 건물). 1856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외관을 유지한 채 현재 고급 오피스들이 입주해 있다. 주변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unsplash
뉴욕 브루클린 도미노공원에 위치한 설탕 정제 공장(가운데 건물). 1856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외관을 유지한 채 현재 고급 오피스들이 입주해 있다. 주변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unsplash
지난 8월 3일 오후 필자는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도미노공원을 찾았다. 과거 설탕 정제 공장(Domino Sugar Refinery)의 붉은 벽돌 외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지역은 이제 원 도미노 스퀘어나 280 켄트 애비뉴 같은 고급 콘도미니엄(한국의 아파트), 오피스, 공공 문화 공간, 그리고 이퀴녹스 피트니스센터 등이 어우러진 복합개발구역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이스트 리버 너머로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유리 커튼월로 빛나는 허드슨야드,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새롭게 들어선 JP모건 본사, '더 서밋'이라는 전망대가 위치한 원 밴더빌트 애비뉴까지 뉴욕의 스카이라인이 거리 풍경처럼 펼쳐진다.

도미노공원 잔디 위에는 반려견과 함께 누워 대화를 나누는 주민들, 책을 읽는 아시아계 청년, 유모차를 끌며 스페인어를 쓰는 가족들, 그리고 인공 모래 코트에서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무리가 어우러져 있었다.

근처 투 핸드 카페 앞에는 브런치를 즐기고 막 나오는 이들과 말차라테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한 청년의 "이 동네는 이제 맨해튼보다 더 힙하면서 고급스러운 지역이야"라는 말도 들려왔다.

과거의 산업 유산과 글로벌 자본, 지역 주민의 일상과 고급 소비가 얽힌 이 공간은 브루클린이 어떤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브루클린의 산업 유산과 다양성의 뿌리

뉴욕시의 다섯 개 자치구(브루클린, 브롱크스, 맨해튼, 퀸스, 스태튼아일랜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맨해튼이지만,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곳은 브루클린이다. 브루클린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뉴욕 항만 산업의 중심지였다.

브루클린해군기지, 도미노설탕정제공장, 화이자 등 수많은 조선소와 공장들이 들어선 전형적인 산업도시였다. 이 시기 브루클린은 노동자 계층, 이민자, 흑인 커뮤니티가 대규모로 정착하며 다양한 문화와 공동체가 어우러진 도시의 기반을 형성했다.

랜디 피어스 브루클린상공회의소 회장은 브루클린이 처음부터 포용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였음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브루클린은 영국인이 아닌 네덜란드인이 세운 도시였다. 그들은 다양성과 포용에 대해 매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Brooklyn was founded by the Dutch, not the English. They had a very different mindset about diversity and i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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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만든 부흥과 젠트리피케이션

그러나 뉴욕 경제의 중심축이 부동산, 금융, 서비스업으로 옮겨가면서 20세기 중후반 이후 산업 기반은 빠르게 붕괴됐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다수의 공장이 문을 닫으며, 브루클린 전역에는 버려진 창고와 폐공장들이 급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낙후된 공간들은 이후 브루클린 대변화의 무대가 된다. 1980~1990년대에 맨해튼의 소호와 로어이스트사이드가 상업화되며 임대료가 급등하자, 많은 예술가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공간이 넓으며 지하철 접근성도 뛰어난 브루클린, 특히 덤보 혹은 윌리엄스버그로 이주해왔다. 이들은 낡은 공장과 창고를 작업실과 공연장으로 바꾸고,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등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며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러한 문화적 부흥은 2005년 뉴욕시의 도시 구역 재조정과 맞물려 급격한 변화를 불러왔다. 산업지구였던 지역이 고밀도 주거 및 상업지구로 전환되며 고급 아파트들과 스타트업을 위한 오피스, 글로벌 대형 브랜드 상점들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다. 이는 낙후된 도시 지역에 외부 자본과 고소득 계층이 유입되면서 주거 환경이 개선되는 한편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기존 주민이 밀려나는 사회적 현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을 넘어 도시의 문화, 구성원, 정체성을 뒤바꾸는 과정이다. 전 세계 도시들 중 브루클린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가장 자주 언급된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사동 가로수길, 연남동, 성수동은 예술가들과 소상공인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거리 문화가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이후 임대료 상승과 대형 브랜드의 유입으로 본래의 색깔을 잃고 상업화된 지역으로 변모해왔다.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가 겪은 변화와 그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브루클린의 자산가치는 지난 20년간 꾸준히 상승해왔다. 콘도미니엄의 중간 매매가는 2005년 3분기 약 45만달러에서 2024년 2분기 약 99만달러로 이 기간 2.2배가량 상승했고, 평균 임대료는 2005년 약 2000달러에서 2024년 약 4100달러로 상승했다. 같은 시기 동안 맨해튼의 매매가는 1.7배가량 상승했으며, 윌리엄스버그는 약 3.0배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인구 구성의 변화 역시 빠르게 진행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흑인과 히스패닉 인구가 다수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백인이 36%로 가장 많고, 흑인이 27%로 뒤를 잇는다. 특히 부시윅과 베드퍼드-스타이브슨트(베드스타이)와 같은 지역에서도 임대료 상승과 자산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저소득층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고, 중산층 이상의 백인과 아시아계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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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본과 한국 투자자의 부동산 개발

이러한 도시 구조 변화의 중심에는 글로벌 투자자와 대형 부동산 개발사가 있다. 칼라일을 비롯한 미국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물론 한국·중국·캐나다 등 해외 자본도 브루클린의 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부시윅 지역의 데니즌 라인골드 프로젝트, 베드스타이의 1057 애틀랜틱 애비뉴와 같은 대규모 멀티패밀리 개발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한다. 최근에는 리노베이션이 완료된 타운하우스 자산들도 포트폴리오에 포함되며 글로벌 투자자들은 다양한 규모의 자산에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의 기관투자자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브루클린 내 신축 멀티패밀리 개발 및 오피스빌딩 대출 등에 활발히 투자했지만, 2022년 이후 금리 인상과 시장 불확실성으로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투자 모델

이런 변화 속에서 부동산 투자를 오직 수익 극대화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지역 주민의 저항, 정치적 압박에 따른 규제(가령 렌트 컨트롤, 개발 제한 등), 커뮤니티 기반 소비자의 이탈 등은 중장기적으로 투자자산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발이 진행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고 지역 문화가 사라지는 경우 장소의 고유한 매력까지 함께 상실되며 지속가능한 수익 창출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피어스 회장은 "브루클린의 경제 개발 이야기는 전통적인 유인책에 기초한 변화라기보다는 '리처드 플로리다'적인 발전이었다(Our economic development story is more Richard Florida than traditional incentives)"고 표현하며, 브루클린의 변화가 세금 혜택이나 대규모 기업 유치가 아닌 창의성과 문화 중심의 도시재생 전략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했다. 토론토대 교수이자 뉴욕대(NYU) 석좌연구원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그의 저서 '창조 계급의 등장(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혹은 '후즈유어시티(Who's Your City)'에서 창의적인 계급이 도시를 발전시킨다고 밝혔다.

그리고 피어스 회장은 "커뮤니티와 함께 개발하지 않는다면 결국 실패한다(If you don't develop with the community, you will ultimately fail)"는 말을 덧붙이며 수익만을 목적으로 한 개발의 한계를 분명히 지적했다.

또한 피어스 회장은 부동산 개발자와 투자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실천적 제안을 제시한다. "규모 있는 개발을 한다면, 지역사회에 개방된 커뮤니티 시설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If you're doing something to scale, have community facilities open to the public)." 그는 투자자들이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미니 커뮤니티 재단'을 설립해 예술가들과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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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투자자들의 성공 방정식

부시윅과 베드스타이 같은 지역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재즈와 힙합 음악, 카리브 및 아프리카계 식문화, 길거리 예술, 그리고 커뮤니티 기반의 소상공인들이 만들어낸 뉴욕 특유의 생동감 있는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다.

실제로 브루클린은 세계적 뮤지션인 제이지와 배우 겸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자란 고장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지역은 오랜 시간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창조해온 도시였고, 이러한 자산은 도시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를 구성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개발은 단지 건물을 짓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 문화의 맥락을 보존하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앞으로의 부동산 투자는 지역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와 상생하는 개발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깊이 이해하는 현지 기반 운용사 혹은 현지화를 이룬 한국 운용사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수익성은 물론 중요하지만, 문화와 커뮤니티를 고려한 개발은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사회적 신뢰를 창출할 수 있다.

지역 주민과 함께 성장하며, 도시의 이야기를 지켜나가는 투자야말로 브루클린이라는 특별한 장소에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며 한국 자산운용사들이 미국에서 현지화하며 오랜 기간 성공신화를 만들어가는 성공 방정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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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석 마스턴아메리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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