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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의 금융과 경제] 이재명 대통령에게 바란다

내수·통상·잠재성장률 회복 등
韓 경제, 한치의 여유도 없어
후대위한 씨앗 뿌리기도 중요
신성장 산업 육성 제대로 할
산업전문가 데려와 일 맡겨야

  • 기사입력:2025.06.08 17:27:03
  • 최종수정:2025-06-08 19: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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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작년 12월 발발한 계엄사태 이후 6개월 만이다. 취임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는 없으며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정희면 어떻고 김대중이면 어떤가'라는 첨언까지 곁들였다. 필자 포함, 많은 국민들이 그 발언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사실 우리가 처한 경제 상황은 그의 말대로 이념 논쟁을 할 여유가 없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만큼 먼저 산적한 현안을 처리해야 한다. 작년 3분기부터 경기가 위축되더니 계엄 여파로 올 1분기에는 결국 역성장까지 기록했다. 그 와중에 내수는 초토화됐다. 특히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컸다. 이 대통령의 공약에 따르면 이에 대응해 전 국민 민생지원금 25만원과 소상공인 채무조정 및 탕감 등 지원 방안이 언급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정책의 효과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경기 부양책은 투약 시점이 중요한 만큼 약효를 놓고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조기 집행이 우선이다.

또 다른 현안은 대미 통상 협상이다. 협상의 컨트롤타워가 명확지 않다보니 미국은 다른 나라 대비 우리와의 협상에 덜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새 정부가 출범한 이상 다면적이고 고강도의 압박이 들어올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장사꾼이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식의 협상이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국내 여론상 갈등이 비등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현신이 필요하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설정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단기적 사안보다도 날로 추락하고 있는 잠재성장률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추정에 따르면 2% 남짓이지만 이마저도 과대 추정된 것으로 보인다. 인구 감소뿐 아니라 노동생산성은 OECD 36개국 중 33위다. 결정적으로 향후 성장을 이끌 산업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나라 5대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화학, 조선, 철강 중 반도체를 제외하곤 모두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추진한 중화학공업 육성책에서 비롯됐다. 그런 만큼 이들 중 상당수에서 노쇠 현상이 명징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이들과 바통 터치할 유력한 신산업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간 민간에서 발굴한 2차전지는 중국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바이오산업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하도급 업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당대에서 수확은 못하더라도 후세대를 위해 씨를 뿌리는 늙은 농부의 심정으로 신성장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공약에서 AI나 바이오, K컬처를 육성 산업으로 제시했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다. 국가 주도 산업 육성은 '공유지의 비극' 현상으로 좌초되기 쉽다. 인프라 구축이나 인재 양성, 자금 조달 및 배분과 같은 밑단의 사안부터 기득권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산업의 본류냐, 지류냐, 부품소재냐 애플리케이션이냐, 이런 상위 사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온갖 이권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

지식산업의 경우 규제 혁파는 필수적이지만 그동안 오히려 규제를 쌓는 데 익숙했던 당내와 외곽조직의 이념적 교조주의 역시 넘어서야 한다. 다만 행정, 입법 그리고 사법까지 장악한 역대 최강 권력을 지닌 정권인 만큼 제대로만 하면 성과를 낼 수 있는 절호의 환경이 갖춰진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이나 이권을 좇아 날아온 불나방이 아닌, 진짜 제대로 된 산업전문가를 발탁해 전권을 위임하고 외부 압력을 차단, 무소의 뿔처럼 진격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해줘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경제는 시나브로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간이 없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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