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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도시 발견] 법무부, 니가 양파 캐줄끼가

양파·마늘로 유명한 창녕군
불법 외국인 노동자 단속에
일손 사라진다며 걱정 태산
외국인 없인 농촌 안굴러가
불법 허용하면 안되겠지만
농어촌 살릴 해법 고민해야

  • 기사입력:2025.06.06 17:46:06
  • 최종수정:2025.06.06 17: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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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년 어느 농촌에서 확인한 다인종 국가 한국의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곳에서 확인한 한국의 현실은 농산어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생활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지역은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석리라는 곳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양파를 대량 재배한 곳으로 주장되는 지역이다. 한반도에서 양파를 기른 것은, 구한말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꽃을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심은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 뒤에는 역시 구한말의 원예모범장에서 시험 재배했다고 하는데, 이 원예모범장은 권업모범장을 거쳐 현재의 농촌진흥청에 이른다.

이 마을의 모 집안 사람들이 1909년부터 양파를 식용으로 기르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는 마을 사람들과 협력해 대량으로 양파를 생산하게 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지금도 창녕군은 한국의 대표적인 양파 생산지다. 이들 마을 주민은 경화회라는 조직을 결성했는데, 이 또한 농업협동조합이나 새마을운동과 같은 농촌 잘살기 운동의 원형으로 주목된다.

다만 요즘은 양파보다는 마늘을 많이 기르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답사를 갔을 때에는 마침 마늘 수확을 시작해서, 지역 곳곳의 밭에서 마늘 캐는 노동자들이 보였다. 타지에서 이들을 태워온 듯한 인력회사들의 버스도 창녕군내 곳곳에 주차돼 있었다. 이 지역에서 양파 생산을 주도한 집안의 종택 앞에 설치된 화장실에는 양파와 마늘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100여 년에 걸쳐 잘살고자 온갖 작물을 시험 재배하고 대량 생산해 오늘날의 번영을 이룬 노력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화장실은 주차장과 함께 설치돼 있었는데, 인력회사들 버스가 주차돼 있는 이 주차장의 한편에 "법무부 니가 캐줄끼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 플래카드는 이곳뿐 아니라 창녕군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사람은 못 구하고 단속만 하나! 마늘밭은 울고 있다!"라든지 "걱정이 태산이다! 농사꾼은 뭐하노! 공들여 키운 마늘 수확 못하여 우짜노!" 같은 격렬한 문구를 담은 플래카드들도 확인되었다.

나는 원래 이곳에 설치돼 있는 '양파시배지' 석상을 보러 현지를 방문한 것이었다. 양파를 두 손으로 떠받친 모양이 인상적이어서 유명한 석상이다. 그랬기 때문에 양파시배지 석상 바로 앞을 비롯해서 창녕군내 곳곳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의 내용을 단숨에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현재 이곳의 농민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은, 창녕군의 중심지인 창녕읍내 서북쪽에 세워진 경화회관이라는 건물 앞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에서 풀렸다. "C3(관광·여행) 비자 외국 입국자 단속 일시정지 요구." 요컨대 단기 비자로 한국에 입국해서 원래 목적과 달리 한국 농촌에서 농작물의 재배 및 수확에 종사하는 외국인에 대한 법무부의 단속을 느슨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불법을 용인해달라는 요구지만, 이렇게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한국의 농촌이 굴러가지 않으며, 그 결과 마늘 수확에 실패하면 여러분이 식사 때마다 드시는 마늘이 식탁 위에 올라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경화회관은 경화회라는 조직에 속한 건물이다. 앞서 말한 1960년대에 양파의 대량 생산을 추진한 지역 농민들의 단체다. 창녕의 농민들이 잘살게 되는 계기가 된 양파 농업을 주도한 그 경화회의 건물 앞에, 마늘 재배 농민들의 주장과 한국 농산어촌의 현실을 담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은 상징적이었다.

전 국민이 먹는 마늘은 창녕의 외국인들이 기르고 있다. 서울·경기·인천 시민들이 먹는 깻잎은 경기도 포천의 외국인들이 기르고 있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단속 문제 및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는, 단순하게 보편 인권의 차원에서만 다룰 게 아니다. 이들이 합법·불법을 막론하고 한국에 입국해서 농산어촌 구석구석에서 일해주지 않으면, 한국 출신자들만으로는 한국의 농산어촌이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시민 개개인이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절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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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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