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이재명 정부가 처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현재 한국은 정치, 외교,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승자 독식의 정치제도·문화, 저출산·고령화 심화와 지방소멸, 고착화된 저성장세 및 청년실업, 미·중 경쟁 속 전략적 딜레마와 무역 환경 불확실성 증대, 북핵문제, 그리고 날로 첨예해지는 계층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및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간단한 문제가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국이 여대야소로 바뀜에 따라 이재명 정부가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당분간은 조성된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여소야대 정국에서 비롯된 국회와 행정부 간 끔찍했던 대립과 교착은 한동안 없을 것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산적한 난제들을 풀어가는 데 모든 국정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드문 축복과 함께 임기를 시작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 우호적인 정치 환경은 잠시 허락된 축복일지 모른다. 우선 윤석열 전 대통령은 거대 야당한테 국정 운영 실패의 책임을 전가할 수라도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그럴 수 없다. 온전히 그와 여권의 책임이다. 또한 불과 3년 후면 총선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며, 여당의 현재 의석수를 감안했을 때 지금의 압도적 규모를 유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자신한테 집중된 권력을 산적한 난제들의 해소와 국가 전체 이익의 확대에 선용하지 않고, 오로지 지지층만을 바라보며 정파적·사적 동기하에 사정 정국을 조성하는 등 편파적 행태를 보인다면 실패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이 가운데 중도층이 야권 쪽으로 급속히 이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의 특성상 일부 중도층 이반만으로도 원내 의석수에서 극단적 역전이 발생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제22대 총선 당시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역구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에 불과했지만 의석수 차이는 무려 71개에 달했다. 물론 선거제도의 불비례성이 본질적인 문제겠으나 현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다음 총선 결과는 얼마든지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재명 정부는 드물게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을 맞은 만큼 민주주의 심화를 위한 정치·사법개혁, 지역 균형발전,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 구축, 복지 확대를 통한 경제적 불평등 완화, 사회적 약자 보호, 국민 대통합 등 정책적 목표들에 매진해야 한다. 이 길만이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넓혀가고 종국에 해당 목표들까지 완수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아가 이를 위해서라면 극단을 제외한 야권과도 협력하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 견제는 잠시 느슨할지언정 국민의 견제는 상존할 것임을 잊지 말아주시기를 이 대통령께 부탁드린다.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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