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여움의 시대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작고 연약하고 가엾고 무해한 것들에 대한 추구가 넘쳐난다. 아기가 아장대고, 강아지가 울상 하고, 고양이가 미소 짓고, 판다가 재롱떤다. 오스트리아 생물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우리 마음엔 어린 개체에 끌리는 마음의 도식이 있다고 말했다.
유아 도식, 즉 몸과 비교해 커다란 머리와 둥근 얼굴, 얼굴에 비해 큰 눈과 작은 입, 토실토실한 뺨, 어설프게 뒤뚱대는 움직임, 부드럽고 탄력 있는 살결, 은은한 웃음소리 등 어린 개체에서 나타나는 공통 특징은 뇌의 보상 중추를 활성화해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고, 연민과 공감이 일어나 돌봄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어지간히 독하고 냉정한 마음이 아니면, 인간은 귀여움을 이기지 못한다.
귀여움은 인간을 사로잡기에 자연스레 상품 미학의 대상이 된다. 강승혜의 '귀여워서 삽니다'(한스미디어 펴냄)에 따르면 "귀여움에 사로잡힌 인간은 순순히 지갑을 열어젖힌다. 심지어 마음은 즐겁기 한량없다". 귀여움은 별 효용 없는 제품에 돈을 쓰면서 후회하지 않고 외려 기뻐하는 소비자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일본은 유아 도식을 깊이 연구해 헬로키티, 포켓몬 등 귀염 캐릭터를 개발함으로써 어른들에게까지 정서적 유착을 일으키는, 이른바 '가와이(kawaii) 상품'을 산업화했다. 게다가 귀여움은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쇼츠 등 짤막한 콘텐츠 환경에 유리하다. 유아 도식은 순간적으로 주의를 끌고, 즉각적으로 애착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귀여움에는 약하고 미미하고 힘없는 존재를 아끼는 마음도 담겨 있다. 요즘 청년들은 '김네넵'이나 '무무씨' 같은 캐릭터에 감정이입 중이다. 이런 '애쓰는 약자'를 자화상 삼아서 자기 연민과 위안을 얻는 것이다. 높은 실업률,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불안과 좌절, 지나친 경쟁과 고립 등에 상처받은 마음이 작은 만족과 다정한 치유를 갈망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인간을 바꾼다. 육아는 무척 어렵고 힘들어 큰 주의를 기울이고 꽤 시간을 들여야 잘해낼 수 있는 전문 기술이다. 아기를 기르면서 우리는 짜증과 곤란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내는 긍정성을 기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지와 지혜를 깨달으며, 이타적 행동과 사회적 유대감을 발달시킨다.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사무실 책상에 놓인 아기 사진, 앙증맞은 인형 등은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그러니까 귀여움 문화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세상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변화시키려는 갈망이 깃들어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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