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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동주공제'의 자세

  • 기사입력:2025.04.28 18:02:03
  • 최종수정:2025-04-28 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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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70년대 산아 제한 정책을 펼치던 시기에 등장한 표어다. 당시 우리나라는 급격히 불어나는 인구 증가세를 완화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가 지난 현재,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반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의 인구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출산율이 2.1명이 돼야 하지만,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75명에 불과하다.

인구변천이론에 따르면 저출산·고령화는 경제 성장에 수반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산업화 초기에는 다산다사의 인구 형태를 보이지만 선진국으로 진입할수록 소산소사의 패턴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합계출산율 평균은 1.51명으로, 1960년 3.34명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지나치게 가파른 인구 감소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해 세계 각국은 그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는 출산으로 인한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자 가족계수를 적용한 세금 감면과 수당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자녀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헝가리는 국내총생산(GDP)의 5%를 출산 장려 정책에 투자하고 있으며, 특히 4자녀 이상 출산 시에는 소득세를 평생 면제해주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올해 4월부터 출산 가정에 현금을 지급하는 아기 보너스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관련 예산으로 3억3000만유로를 편성했다.

우리 정부도 2006년부터 2023년까지 저출산 예산으로 총 380조원을 투입하는 등 출산율 반등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 오고 있다. 그 결과 2024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에서 0.75명으로 9년 만에 소폭 상승한 것은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너무 멀다. 오스트리아의 인구학자 볼프강 루츠는 한 국가의 출산율이 초저출산 수준인 1.3명 이하로 내려갈 경우 특단의 노력 없이는 회복이 어렵다고 말하며 이를 '저출산의 함정'이라 명명했는데, 우리나라가 바로 그 저출산 함정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이제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합심해 총력을 다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8월 경제계·금융계·학계·방송계·종교계가 공동으로 출범한 민간 주도 '저출생 극복 추진본부'의 가동은 매우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발맞춰 사적 사회안전망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보험산업 역시도 저출산 극복에 힘을 보태고자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 나가고 있다. 난임 치료 및 산후조리 지원 등 다양한 임신·출산 관련 상품 개발을 확대하고 있으며, 다태아에 대해서도 태아보험 가입이 쉬워지도록 인수 기준을 개선했다. 출산·육아휴직 시 보험료 납입 및 대출 상환을 유예해주는 지원 방안도 검토 중이다.

손자병법 구지편을 살펴보면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는 이 고사성어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함께 노력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보험업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주공제의 자세로 힘을 모은다면 저출산 함정이라는 난제를 극복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병래 손해보험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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