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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한 해 시작과 화해의 길

유대인, 새해부터 10일동안
속죄하고 성찰의 시간 가져
서로 화해·용서 실천하기도
남의 잘못 물어뜯기 바쁜 韓
지켜야 할 가치 되돌아보길

  • 기사입력:2025.01.24 17:12:30
  • 최종수정:2025.01.24 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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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낡은 것처럼 보이고, 또 비합리적인 것으로 폄하되기도 하나 이따금 깊은 동감을 끌어내는 지혜를 보유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일상적일 때라면 별로 내키지 않는 방식, 곧 다른 종교문화에서 지혜를 얻자고 제안해 보려 한다.

지금은 세계가 그레고리우스 역법에 따른 1월 1일을 새해 시작으로 여기지만 문화권마다 새해의 시작은 사뭇 다르다. 우리가 살펴볼 유대인들 역시 그들만의 역법이 있고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유대력에 따르면 티슈리월 1일과 2일에 로쉬 하샤나라는 새해 축제를 지낸다. 로쉬는 '머리', 하샤나는 '해'를 의미하니 로쉬 하샤나는 해의 머리, 곧 한 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때를 나팔절이라고 하는데, 양각 나팔을 불어서 새해를 알린다.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로 인사하고, 소망과 뜻한 바가 이루어지라고 덕담을 건넨다. 유대인들 역시 사과와 꿀을 먹으며 달콤한 새해를 기원하지만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신 앞에서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열흘은 이른바 '경외의 날들' 혹은 '회개의 10일'이라고 불리는데, 정의와 사랑의 무한한 신 앞에서 유한하고 흠결 많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와 주변 사람들, 나아가 세상의 죄와 잘못을 돌이킨다. 성찰하고 회개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때는 서로 용서와 화해를 실천해야 하는데, 이는 로쉬 하샤나에서 10일이 되는 날인 욤 키푸르(대속죄일)까지 이어진다.

욤 키푸르는 아마도 유대교의 절기 중 가장 거룩하고 엄숙한 날이 아닐까 한다. 이때는 24시간 동안 금식하고 기도한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죄를 회개하고, 개인 혹은 사회의 구조적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한다. 예루살렘 신전이 있었을 과거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극히 거룩한 성전의 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의식을 지냈다. 욤 키푸르가 바로 그날이며, 백성의 죄를 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위한 속죄제를 드렸다. 여기서 드러나듯 회개는 단지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것이다.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라 사회적 죄악과 부패, 차별과 갈등의 전반에 걸친 것이다.

회개와 성찰은 단지 죄의식과 수치감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가치를 재확인하며, 이 과정에서 그릇된 것을 수정하고자 하는 깊은 결단이 일어난다. 도덕과 윤리의 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그런 종교문화가 유효하고 지금도 잘 기능하고 있냐고 되물을 수 있다. 누군가의 눈에 그들의 행태는 호전적이며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억압적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지적이다. 그들이 가진 종교 문화와 그 뜻이 그들 사이에서 이상적으로 구현된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로쉬 하샤나부터 욤 키푸르에 이르는 새해를 맞이하는 그 지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참 뜻깊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우리나라가 경건하게 서야 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그것을 약점 삼아 목이 물어뜯길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저지른 명백한 실수나 죄마저 어떻게든 변명하고 감추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회개와 자성보다는 다른 이들의 흠을 찾고 확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주장도 들어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과연 나아졌는가? 갈등 지수가 세계 상위권인 우리 사회는 어떻게 화해와 용서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선조들도 설날 즈음해서 대속죄일을 만들어 전통으로 전해주셨으면 어땠을까 허튼 상상도 해 보았다.

[김학철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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