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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뭔데 대통령 말을 안들어?…선출권력은 뭐든 가능하다는 착각 [매경포럼]

헌법 권한 약한 사법부에 ‘임명권력’ 핸디캡 파고든 대통령·여당의원 ‘선출권력’ 국민 뜻·다수 우위 앞세우면 헌법유린·중우정치 귀결 뿐

  • 김병호
  • 기사입력:2025.09.23 13:40:32
  • 최종수정:2025.09.23 13: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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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권한 약한 사법부에
‘임명권력’ 핸디캡 파고든
대통령·여당의원 ‘선출권력’
국민 뜻·다수 우위 앞세우면
헌법유린·중우정치 귀결 뿐

법률가이자 정치사상가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 약하고 소극적인 권력이라고 했다. 실제 사법부는 속성상 소송이 제기돼야 작동을 시작하는 수동적이고 간접적인 권력이다.

권력분립을 처음 주장한 정치철학자 존 로크는 국가권력을 입법권과 집행권·동맹권·대권으로 나눴다. 이 중 의회가 가진 입법권을 최상에 두고, 군주에 속한 나머지 것들보다 상위라고 봤다. ‘권력 균형’보다는 ‘권력 분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일각에선 국가 간 외교권인 동맹권과 비상 대응을 위한 대권을 뺀 입법권과 집행권의 ‘이권분립’으로 보기도 한다. 사법권은 집행권에 부수된 것에 불과했다.

법률가 출신의 몽테스키외는 사법권을 분리시켜 지금의 ‘삼권분립’ 체계를 만든 인물로 평가된다. 권력 간 분리를 넘어 대등한 균형을 강조했지만 헌법학자들은 그가 사법권을 경시한 경향도 지적한다. 예컨대 사법을 맡을 독립기관을 별도로 두지 않고 배심재판을 선호했고(양건 ‘헌법강의’), 사법권에 대해 ‘비상설 법정을 통한 소극적 독립성’(권영성 ‘헌법학원론’), ‘집행권의 테두리 내에서 이해’(허영 ‘한국헌법론’) 등으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또 귀족들의 범죄와 정치적 소송은 법원 대신 입법부(상원) 소관으로 했다는 주장도 있다.(정창조 ‘권력분립과 인민권력 관계에 대한 연구’).

“대법원장 사퇴” 민주당 사법부 압박, 법원은 ‘침묵’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원은 지난 주말부터 이어진 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 속에도 특별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25.9.16     nowweg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대법원장 사퇴” 민주당 사법부 압박, 법원은 ‘침묵’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원은 지난 주말부터 이어진 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 속에도 특별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25.9.16 nowweg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렇듯 사법권은 전통적으로 취약한 권력이다. 우리 헌법에서도 사법부의 입법·행정부에 대한 견제 권한은 상대적으로 작다. 국회에 대해선 위헌법률결정제청 정도다. 위헌법률심판이나 탄핵심판 등은 정치색이 짙은 헌법재판소 소관이다. 반면 국회는 대법원장·대법관 임명동의,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의결, 사법부 예산 심의확정 등 다양하다. 법원은 정부나 국회와 달리 정치적 호소를 통한 국민여론을 환기하는데도 서툴다.

이에 더해 최근엔 대통령실과 여당으로부터 ‘비선출 권력’이라는 핸디캡까지 가중됐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국민이 직접 뽑은 권력이 법원 같은 임명된 권력보다 상위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라며 국회 우위론에 발동을 걸자 대법원장 사퇴 요구 등 임명 권력 무시 행태가 확연해졌다.

선출 권력의 우위 여부는 새로운 논쟁은 아니다. 2020년 12월 서울행정법원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무효화하고 업무 복귀를 결정하자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법원)이 선출된 권력(대통령)을 짓밟는 일을 막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 헌법학자들은 선출 권력 우위론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삼권분립에 위협이라고 본다. 선출 권력이 위세를 뽐내더라도 국민이 ‘우리 대통령과 의원은 뭐든지 다해~’ 라며 절대 권력을 위임한 것이 아니다. 삼권분립과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같은 헌법적 가치를 해칠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다.

헌법에는 ‘선출·임명권력’이라는 표현도 없을 뿐만 아니라 3~6장에서 국회·정부·법원·헌법재판소의 조직과 구성, 권한을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만 헌법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간접적이나마 국민 의사가 반영되도록 했다. 만일 판사를 국민이 선출한다면 대중영합적 재판부 구성으로 법적 안정을 기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참석한 조희대 대법원장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5.9.22     hih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참석한 조희대 대법원장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5.9.22 hih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물론 현 사법부에 대한 겁박과 불신은 법원이 자초한 면도 있다. 정치인 재판에서 판사들이 눈치보지 않고 공정하고 신속한 결론을 내렸다면 법원 위상과 권위는 달라졌을 것이다. 엉망이 된 정치를 바로잡아달라는 국민 열망을 법원 스스로 차버린 측면도 강하다.

진보 논객인 고 신영복이 쓴 ‘담론’에는 ‘다수 의사가 힘이고 그 자체가 정의’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 ‘다수가 정의라는 사실이 바로 민주주의’라고도 했다. 하지만 다수 의사가 만능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 법원 의견도 묻지 않고 진행중인 사법개혁이나 대법원장 사퇴를 두고 국민 뜻 운운하며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나라를 도탄에 빠트릴 ‘중우(衆愚)정치’ 폐단으로 기록될 것이다.

헌법학 서적은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가운데 입법권과 행정권이 동일 집단에 속할 경우 자유민주주의는 사라질 것이라고 쓰여 있다. 지금 우리가 이를 입증하려 하고 있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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