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일, 미국 금융 시장이 들썩일 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던 미국 금융 규제의 두 거인이 한자리에 섰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했다.
“등록된 증권·상품 거래소에서 암호화폐(코인) 현물 거래를 허용한다.” 이번 발표는 대통령 디지털자산 시장 실무그룹 보고서 ‘디지털 금융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 강화’에서 제안한 권고안을 양측 기관이 받아들인 결과물이다. 해당 발표는 단순한 행정 공지가 아니다. 말 그대로 암호화폐 시장이 ‘변방의 코인방’에서 ‘월가 메인 스트리트’로 이사 가는 날이 온 것이다. 양 기관이 손을 잡고 등록 거래소를 통한 코인 현물 거래를 허용한다고 공동 발표한 이 성명은 법률 개정 없이 현행 규정 아래에서도 등록된 증권·상품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또는 이더리움 같은 코인 현물 거래가 가능한 해석적 권한이 있음을 분명히 한 결과물이다.
폴 앳킨스 SEC 의장과 캐롤라인 팜 CFTC 수장(직무대행)은 입을 모아 “시장 참여자에게 거래 장소의 선택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이번 조치가 암호화폐 시장 혁신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데 있어 중요한 진전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암호화폐 시장이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는 평이다.

증권·상품 거래소 허용, 왜 중요한가?
대중 코인 투자 접근성 ‘획기적 확대’
지금까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코인베이스나 바이낸스 같은 전용 거래소에서만 거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앞으로는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나스닥(NASDAQ),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같은 주류 증권 거래소와 상품 거래소에서도 비트코인을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상상해보자. 앞으로는 익숙한 증권 거래 시스템을 통해 비트코인을 클릭 한 번으로 살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코스피에서 비트코인, 이더리움, XRP(리플)를 직접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식 투자자들은 별도 암호화폐 거래소 계정을 만들거나 복잡한 실명 확인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디지털자산에 대한 대중 접근성의 획기적 확대기 때문이다. 미국 가계의 58%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제 주식 투자하는 사람은 누구나 주식 시장을 통해 가상자산을 손쉽게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조치는 수천만명 잠재적 투자자에게 코인 시장 문을 활짝 열어준 것과 같다. 그동안 “나도 코인해볼까?” 하면서도 암호화폐 거래소 가입 절차 때문에 망설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주식 사듯 코인 사는 세상’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됐다.
사실 이번 발표가 더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기관 투자자의 본격적인 진입이다.
그동안 암호화폐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장벽은 바로 규제 불확실성이었다. 미국 금융당국은 암호화폐를 어떻게 분류할지를 갖고 티격태격해왔다. SEC는 “비트코인 빼고 다 ‘증권’이라며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CFTC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상품’이고, 선물 거래가 가능하다”고 맞서며 서로 규제 권한을 두고 다퉈왔다. 이런 식으로 규제 권한을 두고 양 기관이 대립해왔기 때문에, 월가 대형 은행이나 연기금 같은 기관은 함부로 코인을 살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두 기관이 손을 맞잡고 공동 성명을 낸 것이다. “등록된 거래소라면, 현물 암호화폐를 거래해도 된다.” 이 말 한마디로 제도권 진입 장벽이 확 낮아졌다. 그동안 규제 불확실성 때문에 월가 대형 은행이나 연기금은 암호화폐 투자가 어려웠지만 이제 규제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JP모건, 골드만삭스, 블랙록 같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관 투자자 입장에서 보관·청산·자금세탁방지 등 규제 체계가 확립된 증권 거래소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엄청난 규모의 기관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돈은 소매 투자자의 수천 배, 수만 배 규모다. 자금이 시장으로 들어오면 유동성이 늘어나고, 가격 변동성은 줄어들며, 시장은 훨씬 더 투명해진다. 기관 투자자들은 전문적인 리스크 관리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이끌 것이다. 말 그대로 ‘코인 시장의 성년식’이다.
계속되는 美 친코인 드라이브
한국 코인 거래소도 경쟁 자극
이번 결정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암호화폐 산업의 미국 주도권 확보를 위해 추진해온 일련의 정책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간 트럼프 정부는 암호화폐 산업의 미국 주도권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과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 통과, 그리고 대통령 산하 ‘디지털 자산 시장 워킹그룹 보고서’ 등을 통해 CFTC에 현물 암호화 자산 시장 감독 권한 부여를 권고했다. 여기에 더해 이번 발표로 국민들은 강력한 정부 친코인 정책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이미 SEC는 2024년에 비트코인·이더리움 스팟 ETF 승인을 통해 기관 투자를 유도해왔으며, 이번 공동 지침은 그 연장선상에서 현물 거래 기반을 강화하는 조치다. 그리고 올해 10월 하순으로 예상되는 XRP와 솔라나 등의 현물 ETF 승인 가능성은 알트코인 불장을 불러올 수 있는 강력한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이번 결정은 미국만의 이슈가 아니다. 미국 결정은 한국에도 파장을 미친다. 뉴욕 증권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살 수 있게 되면, 이용자들이 굳이 국내 거래소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다. 업비트나 빗썸 같은 국내 거래소는 해외 거래소와 경쟁하기 위해 투명성과 보안을 강화하고 글로벌 플랫폼으로 변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미국 금융당국이 제도권 편입을 주도하면서 한국 금융당국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미래에는 코스피나 코스닥 시장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거래가 가능해지거나, 주요 암호화폐가 증권 시장에 상장되는 날이 올 수 있다. 주식 계좌 하나로 삼성전자와 비트코인을 동시에 거래하는 시대가 온다.
SEC와 CFTC 이번 결정은 암호화폐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다. 코인은 더 이상 변방의 실험실이 아니다. 이제 월가 한가운데에서, 심지어 코스피에서도 거래될 준비를 마쳤다. 시장이 더 안전하고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2025년 가을, 우리는 ‘암호화폐 대중화’의 문이 활짝 열린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단순한 가격 상승 그 이상이다. 암호화폐 시장이 전통 금융과 융합하며 전 세계 금융 질서를 다시 쓰는 서막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또한 이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 이제는 제도권에서 크립토를 만나는 시대를 본격 준비해야 한다. 우리도 미국처럼 공식 증권 거래소 연계 거래, 제도권 연기금 유입,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와 업계가 함께 규제 명확성, 안전장치, 시장 기반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홍익희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7호 (2025.09.17~09.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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