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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정담] 수학과 편견

  • 원호섭
  • 기사입력:2025.06.18 17:03:26
  • 최종수정:2025-06-18 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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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499 다음이 뭐야? 510이야?" 귀여운 질문에 웃음이 났다가 '이 나이에 모르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드니 걱정이 밀려왔다.

"수학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 코를 찡그리며 투정하는 아이를 두고 "아빠는 삼중 적분을 풀었는데, 엄마 닮았니"라며 웃었는데 아이가 "왜? 엄마 수학 못 해? 여자는 수학 못 해?"라는 말을 한다. 한 자리 덧셈을 배우는 시기, 숫자에 대한 공포가 이르다 싶었지만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 '나는 못 한다'는 선이 그어진 듯했다.

500을 모르는 딸을 떠올릴 때마다 심란했는데,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고 반성했다.

프랑스 전역의 5~7세 아동 약 300만명을 분석한 결과, 남녀 간 수학 성취 격차는 학교 입학 후 불과 4개월 만에 생기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입학 직전까지 차이가 없던 점수는 1년이 지나면서 남학생이 앞서나가는 현상이 발견됐는데 이는 소득수준, 지역, 학교 유형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결론은 명확했다. 여자아이가 수학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믿고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학교 환경, 교실에서의 무의식적인 차별, '수학은 남자가 잘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과학도 다르지 않다. 이 영역은 남자의 것이라는 메시지가 반복됐고 교실까지 스며들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는 꽤 많다. 남자가 여자보다 운전을 잘하고 길을 잘 찾는다는 말 역시 편견이라는 연구도 쌓이고 있다.

아이가 수학을 두려워하는 것은 숫자 때문이 아니다. 숫자를 둘러싼 시선과 믿음 때문이다. 아이가 숫자와 친해지도록 돕고 싶다면, 세상이 낸 잘못된 문제부터 먼저 풀어야 한다. 무심코 던진 말이, 아이가 숫자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일단 나부터 삼중 적분 얘기를 자제해야겠다. 솔직히 이해 못 해서 시험 때 외워서 적고 나왔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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