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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애플이 '최악의 위기' 맞은 진짜 이유

아이폰 생산 中 의존도 높은데
트럼프는 美로 공장 이전 압박
경쟁력 하락 우려에 진퇴양난
AI 전략 부재·소송보다 치명적
제조업 탈중국은 전 세계 과제
유일한 대안인 韓이 기회 잡길

  • 이덕주
  • 기사입력:2025.06.16 17:13:09
  • 최종수정:2025-06-16 19: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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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 본사에서 열리는 연례 행사 '세계개발자회의(WWDC)'. 사전에 큰 발표가 없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대로 '깜짝 발표'는 없었고, 애플의 혁신이 이제 끝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구글, 오픈AI 등과 비교해 인공지능(AI)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정작 아무도 지금의 애플이 역사상 최대 위기에 있는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애플 위기의 본질은 AI에 뒤처졌기 때문도, 조직문화 혁신이 사라졌기 때문도, 반독점 소송 때문도 아니다. 문제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부과하는 관세와 애플에 요구하는 'Made in USA' 아이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오랫동안 애플을 취재해 온 패트릭 맥기가 최근 펴낸 '중국의 애플'은 미국인들이 쉽게 인정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다룬다. 지금의 애플은 중국의 도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파산 위기였던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LG전자에 제조를 아웃소싱하면서 부활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애플이 본격적으로 고속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만의 폭스콘과 손잡고 중국에서 아이팟과 아이폰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생산기지였던 중국이, 이후에는 애플 제품의 최대 성장 시장이 되었다.

반대로 현재 중국 제조업과 샤오미·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을 탄생시킨 데도 애플의 역할이 컸다. 애플은 대만 기업들과 함께 중국 내 전자산업 생태계를 키웠고, 대규모 설비 투자와 함께 제조 기술을 전수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관세전쟁을 벌이고, 애플에 미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라고 압박하면서 회사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첫째,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될수록 애플은 중국 내 생산을 줄여야 한다. 그럴수록 중국 시장에서 애플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제품 판매는 감소하게 된다. 둘째, 생산을 중국에서 인도로 이전하면 애플 제품의 경쟁력이 약화된다. 그렇다고 이전하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계속 유지할 경우, 애플 제품 가격은 급등하고 미국 내 판매가 급감할 것이다. 셋째로 미국 내에서 직접 제조에 나선다면, 가격은 관세를 부과받을 때보다 훨씬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Made in USA' 아이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올해 WWDC에서는 이례적으로 '하드웨어' 관련 언급이 거의 없었다. 애플의 자부심인 자체 설계 반도체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고, 신형 아이폰이나 개발 중인 스마트 안경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하드웨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관세 문제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차단하려는 전략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애플이 이 문제를 얼마나 피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면, 미·중 무역전쟁이 현재 애플의 가장 큰 리스크임을 보여준다.

'중국의 애플'을 읽어보면, 적어도 전자제품 제조에서는 이미 '게임 오버'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중국의 도움 없이 전자제품을 저렴하게 생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 스마트폰이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 브랜드가 '애플'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패배주의에 빠지긴 이르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Made in China' 스마트폰의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가 여기에서 기회를 찾길 기대해본다.

[이덕주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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