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의 세월이 흐른 2025년. 최 선대회장의 장남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 회장은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만나 한일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최 회장은 이틀 후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연대하면 무엇보다 양국이 (LNG 공동 구매를 통해) 비용을 낮추고 효율성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경제 연대를 비롯해 고령화, 통상 등 여러 현안에 대해 같은 고민을 나누는 좋은 파트너로서 계속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이 이시바 총리와 만나던 날 서울에선 제57회 한일경제인회의가 열렸다. 회의 주제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더 넓고 더 깊은 한일 협력'이었다. 한일경제인회의는 1969년 첫 회의 이후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한 번의 중단 없이 매년 열리고 있다. 김윤 한일경제협회 회장은 이날 한일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그 토대 위에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것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최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이 최근 '한일 경제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국가 성장 전략 차원에서다. 두 나라는 저성장이라는 공통 과제에 직면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과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6년 2.99%에서 2026년 1.98%, 일본은 같은 기간 0.94%에서 0.17%까지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저성장 탈출의 해법 중 하나는 단단한 한일 경제 협력이다. 한일 경제블록화가 실현될 경우 경제 규모 확대는 물론 공급망 안정화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두 나라 경제가 합쳐지면 양국 국내총생산(GDP)을 6조~7조달러(약 8400조~9800조원)로 키울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1% 성장률만 기록하더라도 한국 성장률의 2~3%에 맞먹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경제 연대를 통해 2억명에 가까운 내수시장이 형성되면 양질의 청년 일자리와 창업 기회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 지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일청구권 자금 5억달러는 포항제철과 경부건설도로 건설 등에 쓰이며 대한민국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다. 과거 60년 두 나라는 협력과 경쟁을 통해 함께 성장했다. 미래 60년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한일 경제 연대'가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새 정부는 '한일 경제 연대' 같은 재계의 오랜 고민에 귀를 열고 국가 미래 성장을 위한 일본과의 협력 강화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내수경제를 진작하기 위해선 유럽연합(EU)과 같은 한일 경제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재계의 건의에 "연합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년간의 정치 리더십 부재는 해소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급속한 와해로 인해 생겨난 경제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금과 같은 보호무역주의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는 보다 큰 국가 성장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