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스마르크는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면서도 노동자들을 위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산재보험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다. 의회의 강성 보수파로부터 "사회주의자냐"고 공격받았을 때 "사회주의나 다른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고 했다. 비스마르크에게 중요한 건 보수주의 체제를 지키는 거였다. 연금·보험제도 도입은 그 체제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사회주의에 맞서 보수가 전처럼 계속 집권하려면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의 개혁이 필요했다.
비스마르크뿐만이 아니다. 19세기 영국의 보수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 역시 변화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지주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당시의 보수당은 노동자 참정권 확대가 마치 자해행위로 보였다. 그러나 디즈레일리는 진보 정당인 자유당보다 참정권 확대에 앞장섰다. '노동자는 혁명이 아니라 국가에 충성하고자 한다'는 말로 보수를 지지하는 노동자 계층을 찾아냈다.
만약 보수당이 계속해서 지주와 농업, 국교회의 이익을 고집하며 도시민과 제조업, 비국교도들을 배척했다면, 그 당은 오래전에 잊혔을 것이다. 보수당의 정체성과 가치 역시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보수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개혁과 변화가 필요했고, 그 변화를 디즈레일리가 앞장서 이뤄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 민심은 지난해 총선과 올해 대통령선거에서 잇달아 경고장을 날렸다. 이제 국민의힘은 선거에서 드러난 진실을 분명하게 마주해야 한다. 지역으로는 영남과 서울 강남권, 이념으로는 강경 우파라는 편협한 기반 위에 보수 정치를 세운다면, 사상누각일 뿐이다. 중도와 수도권, 청년과 여성의 지지 없이는 다시는 권력의 문턱에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안에서도 최근 변화와 혁신, 미래 같은 말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그 구호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의 기업 철학을 집약한 '자율과 책임'이라는 문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에너지 기업) 엔론은 정직, 소통, 존경, 탁월함이라는 4가지 가치를 회사 로비의 대리석에 새겨놓았다. 그러나 이는 회사가 추구한 진짜 가치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기업의 진짜 가치는 누가 보상을 받고 승진하고 쫓겨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정당도 다르지 않다. 혁신이 진짜라면 그 혁신을 실현할 사람이 앞에 서야 한다. 그 반대의 상징은 물러나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옹호했거나 그의 탄핵에 반대한 의원들이 계속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면, 국민은 물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이 지키고 싶은 보수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비스마르크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복지를 껴안았고, 디즈레일리는 왕정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택했다. 그들의 보수는 역사의 심판대를 통과하며 승리했다. 이제 국민의힘 차례다. 진정 지키고자 하는 '보수의 가치와 정체성'이 있다면, 진짜로 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향후 선거에서 또 패배할 것이다.
1990년대에 영국 좌파 정당인 노동당의 변화를 이끌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세상은 변하는데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되고, 우리의 원칙은 더 이상 원칙이 아니라 (무덤 속에 묻힌) 뼈가 될 뿐"이라고 했다. 이 말은 지금 대한민국 보수에도 딱 맞는 말이다. 보수가 보수로서 살아남으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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