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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정담] K뮤지컬의 해피엔딩

  • 이은아
  • 기사입력:2025.06.09 17:29:59
  • 최종수정:2025-06-09 21: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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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은 여러모로 반전이다.

잘 알려진 원작과 대규모 투자, 인기 배우들이 출연하는 다른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출발부터 달랐다. 극본을 쓴 박천휴 작가와 작곡가 윌 애런슨은 브로드웨이에서 생소한 인물이었고,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는 4명뿐이었다. 유명 스타나 화려한 특수효과에 기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입소문을 탄 작품의 객석 점유율은 90%를 웃돌았고, 미국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까지 석권했다. 9년 전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출발한 창작 뮤지컬이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K뮤지컬'의 저력을 입증한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이어 K컬처의 저변도 넓어졌다.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의 성공 비결로는 한국 고유의 정서와 국적을 초월한 보편적 감성의 조화가 꼽힌다. 로봇의 사랑을 통해 인간의 외로움과 사랑, 이별이라는 보편적 감성에 섬세하게 접근한 것이 국적을 뛰어넘는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처음부터 한국어와 영어 버전을 동시에 만들고, 한국 창작자와 프로듀서가 현지 제작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명성황후' '영웅' 등 한국 뮤지컬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적은 있지만, 일회성 공연에 그쳤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은 장기 공연 중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연간 5000억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라이선스 뮤지컬과 스타 마케팅에 의존한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 역시 제한적이다. 한국의 특수성을 보편적으로 녹여내는 작품 창작과 번역, 해외 배급망 확보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가 무대에 오른 지 내년이면 60주년이 된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으로 한국 뮤지컬은 진정한 해피엔딩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됐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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