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1914년 독일, 2025년 중국 [노원명 에세이]

  • 노원명
  • 기사입력:2025.06.08 09:40:50
  • 최종수정:2025-06-08 09:41:54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동중국해에서 군사 훈련을 전개중인 중국 항공모함 전단. [게티이미지]
동중국해에서 군사 훈련을 전개중인 중국 항공모함 전단. [게티이미지]

‘군중심리’의 저자로 유명한 귀스타브 르 봉은 1차 세계대전 발발 1년 후인 1915년 ‘전쟁의 심리학’을 출간했다. 1차 대전의 심리적 배경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110년 전 유럽인의 눈에 비친 독일이 오늘날 세계인이 바라보는 중국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투키디데스 함정’의 사례로 20세기초 영국과 독일, 지금 미국-중국 관계를 드는 국제정치학 논평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때 독일과 지금 중국은 도전자였다는 것 말고도 여러 면에서 닮았다.

“독일은 경제적 발달이 영국이 1세기 걸려 이룬 것을 막 넘어서려 하는 시점에 전쟁에 돌입했다”고 르 봉은 말한다. 독일이 번영을 누린 것은 25년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짧은 기간에 인구와 무역, 산업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고 이런 경제적 진화가 독일을 위대하게, 동시에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소금에 절인 양배추와 소시지, 철기류, 맥주,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싸구려 잡동사니를 최대한 많이 생산하여 세상을 온통 그런 것들로 가득 채우고…” 르 봉은 프랑스인답게 값싼 독일제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세태가 못마땅했던 것같다. ‘메이드 인 저먼’은 값싼 잡동사니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기계류와 무기에서 영국을 추월했다. 오늘날 ‘메이드 인 차이나’가 제조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중국도 고작 20~30년 만에 미국이 1세기에 걸쳐 이룬 것을 뛰어넘으려 한다.

제조업으로 비대해진 국가는 지리적 팽창 본능에 사로잡힌다. 국가 자본은 거대한 공장들에 잠겨 있고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은 국내 소비에 비해 지나치게 많아서 반드시 외국에 팔려야만 한다. 외국 시장이 닫히면 대량 실업이 일어나고 체제가 위험해진다. 독일은 ‘이 공장을 돌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란 항상적 공포가 정복욕망으로 이어졌다. 지금 중국도 똑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다. 중국은 공포를 어디로 분출할 것인가.

독일은 1871년에야 연방으로 통일된 신생국이었다. 그 신생국을 민족주의와 군국주의가 사로잡았고 곧 게르만 순혈주의라는 과잉 자의식에 의해 규율되는 병영국가가 되고 말았다. 중국의 오랜 역사 중 한족 왕조가 지배한 시기는 의외로 짧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지금의 중국은 한족이 지배한 역대 어느 왕조보다도 넓고, 강력하고 또 민족주의적이다. 공산 중국은 이제 70년이 좀 넘은 신생국이다. 1914년의 독일과 2025년의 중국은 둘 다 성호르몬이 넘치는 청년 국가이고 국가주의적 이상으로 굴러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일 국민은 전반적으로 상업적 우위를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육군과 해군의 성장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자마자 스스로 지적으로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는 민족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르 봉이 관찰했던 독일의 모습을 우리는 지금 중국에서 보고 있다. 르 봉은 또 이렇게 썼다. “독일이 원한 것은 상업적 시장으로서의 식민지가 아니라 독일이 증강한 함대가 보급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해군 기지로서의 식민지였다.” 중국은 증강된 해군력을 대만해협에서, 남중국해에서, 그리고 서해에서 투사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독일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영국이었고 지금 중국은 미국에 가로막혀 있다. 둘 중 한쪽은 사라져 줘야 끝나는 싸움, 존재론적 갈등이다.

“14세기 이후로 영국은 자국과 유럽 강대국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우방국들을 지키는 정책을 펼쳤다.” 이 작은 우방국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의미한다. 영국은 이들 나라를 지킴으로써 유럽의 강호가 영불해협 너머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를 차단했다. 1차 세계대전 역시 그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간 분쟁에서 촉발된 전운이 독일 대(對) 프랑스·러시아 간 대립으로 번져갈 때 영국은 분쟁에 끼고 싶지 않았다. 유럽 대륙에 절대 강자가 등장하지 않게 하는 것, 대륙의 사자들끼리 싸우게 하는 것이 영국의 제1 외교 수칙이다. 만약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지만 않았어도 영국은 끝내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이 벨기에를 건드리고 말았다. 독일은 독일대로 사정이 있었다.

“벨기에가 독일 상업에 중요한 서쪽 출구를 지배하고 있으며 독일 제국은 당연히 그 쪽으로 확장해야 한다. 독일 상업이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바닷길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 지역의 정치적 지위는 영국에 의해 확립되고, 유지되고, 방어되고 있다. 거기서 영국은 독일로부터 자연적 이점을 박탈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벨기에를 포기하지 못한다.” 르 봉은 독일 전직 외교장관의 서신을 인용해 벨기에에 대한 독일의 이해를 이렇게 요약했다.

영국과 독일에 있어 벨기에에 해당하는 요충이 미국과 중국의 경우에는 어디인가. 양국 해군과 무역 이익이 충돌하는 곳, 그곳의 장악 여하에 따라 동아시아 패권 향배가 좌우되는 전략 거점! 여러 곳이 있겠지만 지금 가장 민감한 곳은 대만일 것이다. 영국이 벨기에에 그랬던 것처럼 대만의 정치적 지위는 미국에 의해 확립되고, 유지되고, 방어돼 왔다. 그 현상(status quo)을 중국은 깨고 싶어 안달이다.

1차 세계대전의 직접 원인이 된 것은 몇 가지 우연의 중첩이었다. 독일이 영국을 꺾어보겠다고 일부러 일으킨 전쟁이 아니었다. 그러나 르 봉에 따르면 “(물이 넘쳤을 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누가 마지막 물 한 방울을 유리잔에 부었는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 유리잔을 서서히 채우고 있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대만해협에서 벌어지는 미·중 간의 이해 충돌은 서서히 채워지는 유리잔과 같다. 마지막 한 방울을 떨어뜨릴지 말지는 우연이 결정하겠지만 독일이 피하지 못한 운명을 중국은 피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