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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패배 국힘…새로운 보수 탄생의 조건 [신율의 정치 읽기]

  •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기사입력:2025.06.05 13:37:27
  • 최종수정:2025-06-09 09: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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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6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6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투표율이다. 투표율 79.4%,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이다. 선거를 앞두고 투표율이 높으면 김문수 후보가 유리하고 투표율이 낮을 경우 이재명 후보가 유리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투표율이 높다는 것은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이른바 샤이보수 혹은 셰임보수가 투표장에 나왔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투표율이 낮을 경우 이들 샤이 혹은 셰임보수가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따라서 이재명 후보가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투표율이 높음에도 이재명 후보가 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는 셰임 혹은 샤이보수 때문에 투표율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분노 투표 때문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분노 투표가 발생하면 투표율이 높아진다.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가 분노 투표 덕분에 투표율이 높아진 것이라면, 분노 원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분노의 원인은 바로 불법·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국민의힘 다수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는 데 있을 수 있다. 김문수 후보 역시 선거 막판에 다소 태도를 바꾸긴 했지만, 선거 운동 초반부터 종반까지 탄핵 반대 입장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내란’ 여부가 현재 재판 중이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론적으로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혐의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므로 김문수 후보 답변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정치인은 그런 식의 발언을 해서는 곤란하다. 정치인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단을 내려 이에 입각해 주장을 펼쳐야 한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잘된 결정’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9%에 달했다(한국갤럽이 4월 8일부터 10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문수 후보는 이 69%의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고 선거 운동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응답한 25%만을 바라보며 선거 막판까지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비상계엄으로 놀라고 계엄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반 국민 입장에서, 김문수 후보의 이러한 태도는 실망스러울 뿐 아니라 분노마저 일으켰다.

선거 막바지에 그는 탄핵과 계엄에 대해 사과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상당수 유권자가 이미 지지 후보를 결정한 뒤에야 사과했다. 도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사과했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김 후보는, 보수층 내부에도 김건희 씨는 수사를 받아야 하며 죄가 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어야 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수층 중에서도 그의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 행위’, 즉 ‘친위 쿠데타’로 인식하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김 후보는 이런 합리적 보수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했다. 김 후보 스스로가 이런 상황을 조성했으니,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층 지지를 끌어들이지 못한 것은 필연적 결과다.

이런 측면은 국민의힘 구성원과 김문수 후보가 얼마나 여론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선거 패배 책임이 김 후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내 다른 인사들의 책임도 있다.

지난 6월 1일,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채택했던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은 무효화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31일 전광훈 목사 집회에 메시지를 보낸 데 대한 당 차원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해당 메시지에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나라를 정상화하기 위해 오는 6월 3일 반드시 투표장에 가셔서 김문수 후보에게 힘을 몰아주시길 호소드린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왜 굳이 그런 메시지를 보냈는지는 의문이다. 전광훈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어차피 보수 정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지지를 요청하는 것은, 진정한 ‘호소’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즉,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자신을 따르는 세력이 여전히 존재함을 드러내려는 목적이 있었을 수 있다. 또, 대선에 자신도 기여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윤 전 대통령 행보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당혹스러워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를 추진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직후 윤상현 의원이 나서 이를 반대하며 “당의 뿌리마저 흔들리게 된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내부 상황은 점점 더 혼란스러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인사가 이런 말을 한다면, 이는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의 지지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또한 국민적 분노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보수 정당의 ‘뿌리’라는 주장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보수 정치인이라 부를 만한 경륜도 부족하다. 특정 정당의 ‘뿌리’로 불릴 만큼 보수를 위해 헌신한 이력도 찾기 어렵다. 이런 사람을 지키겠다고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의 지지를 포기한다면, 국민의힘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뿌리’를 찾다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역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 패배가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선 패배를 계기로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떠받드는 세력과 결별하는 것이, 보수의 재정립과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다. 새롭게 탄생할 보수는 국민 여론과 눈높이에 부합하는 보수여야 한다.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삼되, 공정함도 항상 보장해야 한다. 또한 획일성을 배격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보수여야 하며, ‘다름’을 ‘배척’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경직된 정치 세력, 특정 인물 중심의 정치 집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보수도 다시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지금 보수가 완전히 변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보수 정치는 사라질 수 있다. 보수가 사라지고 진보만 남는다면, 그런 나라의 정치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또한, 견제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보수의 재정립, 혹은 보수의 재구성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보수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도 당권 싸움이나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 보수를 영원히 버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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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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