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버타운이나 고령자 주택단지는 은퇴 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하릴없이 소일하면서 모여 사는 곳이라는 편견이 크다. 주변과는 고립된 쓸쓸함이 연상된다.
능동적인 100세 시대에 단순히 은퇴자들만의 거주지라는 선입견은 정작 당사자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골프도 하루이틀이지, 우리 시대 활기찬 고령층은 취미 생활로만 여생을 보낼 생각이 없다. 디지털 시대에 변화된 세상을 배우고 어떤 식으로든 당당한 사회의 일원임을 증명하려 한다.
반면 지역 대학들은 공동화 현상과 재정 고갈로 고민이다. 강의가 있는 낮에는 그래도 북적이다 오후가 될수록 캠퍼스는 괴괴한 정적으로 가득 찬다. 주말과 방학에는 오가는 학생이 드물어 식당도 문을 닫는다. 게다가 주된 수입원이 등록금인지라 대학의 수익원 다변화도 절실하다.
은퇴자와 대학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대학 연계 은퇴자 주거단지(UBRC·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다. 고령자가 대학 캠퍼스 안에 자립형 주거 형태로 거주하면서 지역의 의료·복지 시설의 돌봄 서비스를 받는 동시에 대학의 지적 자산이 제공하는 교육과 사회 참여 활동의 기회를 가지는 게 핵심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 대학은 UBRC 건설이 활발하다.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80년대에 인디애나주립대의 ‘메도우드 은퇴자 커뮤니티’ 설립 이후 스탠퍼드대의 ‘클래식 레지던스’, 플로리다대의 ‘오크 해먹’ 등 100여개 대학이 운영 중이다. 특히 애리조나주립대(ASU)의 ‘미라벨라 앳 ASU’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캠퍼스 한복판에 거주 단지가 있다. 입주 고령자는 학생증 격인 대학 출입증을 지참하면 대학 내 도서관이나 체육관 등을 일반 학생들과 함께 자유롭게 이용한다. 강의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강할 수 있다.
일본 역시 지자체의 지역사회 돌봄 체계와 대학의 평생교육 시스템을 연계하여 지역 재생을 위한 인구 유입을 도모하고 있다.
UBRC는 은퇴자와 학생 모두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품격 있는 노후를 꿈꾸는 은퇴자는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노인복지시설과는 차별화된 주거 환경에서 대학 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사회적 고립이 방지된다.
학생에게도 혜택이 있다. 은퇴자의 기존 경력을 바탕으로 맞춤형 멘토링을 받거나 개별 진로 상담을 제공받는다. 사회복지나 웰니스와 같이 전공과 연계된 UBRC 시설 내 아르바이트나 봉사활동도 좋은 기회다.
대학은 은퇴자들이 선호할 만한 평생교육 교과 과정을 개발하고 지역에서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등을 마련함으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국내에서도 부산 동명대가 최초로 승인을 받은 후 광주 조선대, 원주 상지대, 천안 남서울대가 추진 중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에 새로운 수요층인 은퇴자를 유치해 재정적 도움을 주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규제다. 현재는 대학에 설치 가능 업종과 면적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재산세 등 문제로 유휴부지의 창의적인 활용이 어렵다. 학생 학습권이 침범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라면 학내 부지를 과감히 활용하여 다양한 시설이 설치, 운영되게끔 해야 한다.
세대 통합을 가져올 UBRC는 단순히 주거단지의 기능을 넘어 지역과 대학의 새로운 상생형 혁신 모델이다. 규제를 풀어 길을 열어줄 때다.

[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총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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