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통점은 하나다, '부채'. 한국 외환위기는 기업부채, 미국 금융위기는 가계부채, 유럽 재정위기는 정부부채가 문제였다.
2025년, 한국의 정부부채가 위기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작년 말 통계를 보면 기업부채 2800조원, 가계부채 2300조원쯤 된다. 정부부채는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국제결제은행(BIS)이 공기업과 비금융공공기관 부채를 제외하고 중앙·지방 정부 부채만 산정했을 때, 이미 1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때 코로나19 극복과 소득주도성장을 하느라 마구 쓴 탓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년간 120조원(11.8%)이 급증했다.
새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도 돈 갚을 생각은 뒷전이고 쓸 궁리만 한다. '기본사회'를 하겠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5년간 100조원을 쓸 공약을 내놓았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70조원의 세금을 덜 걷겠다고 한다. 재원마련 대책은 둘 다 '모르쇠'다. 나라살림은 누가 챙기나.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열흘 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이유는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정부부채였다. 정부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는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빠르다. 당장 다음 순서로 한국 신용등급이 깎여도 이상하지 않다. 기축통화국 미국은 신용등급이 떨어져도 버틸 만하지만 한국은 치명적이다.
대선TV토론에서 이재명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사이에서 '호텔 경제학'을 놓고 논쟁이 붙었다. 이재명 후보가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 들고나왔다가, 지난 16일 전북 군산 유세 때 기본소득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다시 꺼냈다. '한 여행객이 호텔에 10만원 예약금을 내면 호텔 주인은 이 돈으로 가구점에서 침대를 사고, 가구점 주인은 치킨을 주문하고, 치킨집 주인은 문방구에서 물품을 구입하고, 문방구 주인은 호텔에 빚을 갚는다. 이후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했는데, 마을에 들어온 돈은 없지만, 돈이 한 바퀴 돌면서 상권에 활기가 돈다'는 비유다.
원전(原典)은 댈러스 연준 의장이었던 밥 맥티어가 2011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의장의 통화정책을 풍자하며 포브스지에 '100달러 이야기'라고 쓴 칼럼이다. 사실 기본소득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내용도 호텔, 식료품점, 잡화점 주인들이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아무튼 이 스토리의 구조를 잠깐 빌리겠다. 지금 경제 상황에서 대선 후보들이 공약을 이행한다면 '한 여행객이 호텔에 냈던 선금 10만원을 찾아가겠다고 하니, 이미 돈을 써버린 호텔 주인은 가구점에서 돈을 빌리고, 가구점 주인은 치킨집에서 빌리고, 치킨집 주인은 문방구에서 빌리고, 문방구 주인은 호텔에 빌린 돈을 달라고 한다. 마을에서 나간 돈은 없지만, 온 마을이 10만원씩 빚을 지게 된 형국'이 된다.
대선 후보들에게 공약(公約)이 공약(空約)돼도 좋으니 제발 지키지 말아달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진명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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