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 A씨는 최근 뉴욕의 한 입시학원을 찾았다가 한국인 원장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들이 수학을 곧잘 하는 것 같아서 별도로 심화학습을 시키려 학원을 찾았는데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원장의 말은 이랬다. 미국에서 수학 경시대회는 인도 학생들이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한다. 가끔 중국 학생들도 입상을 한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이 입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19단 암송' 등 인도 학생들의 수학 학습량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학부모들의 열성도 대단하단다. 숙제라도 빼먹으면 안쓰러울 정도로 강력한 훈육이 뒤따른다. '죽기 살기'로 한다는 말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반면 요즘 한국 학생들은 과거의 헝그리 정신은 사라졌고, 학부모들도 자녀에 대해 관대해졌다는 게 원장의 평가였다. 마치 한국이 허리띠를 졸라매던 산업화 시대를 지나 잘살게 되자 정신이 여유로워진 것처럼 교육도 그렇게 됐다는 말 같아서 씁쓸했다.
수학이 무엇인가. 현재 가장 중요한 기술로 부상한 인공지능(AI)의 바탕이 되는 학문이 아닌가. 겨우 뉴욕의 한 학원에서 벌어진 작은 사례지만 AI를 향해 멀리서 달리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미국에서 테크 기업을 취재할 때 인도 출신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인도 출신이 없으면 미국 기업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미국 전문직 비자(H1B)는 2022년 기준 인도가 58.7%를 가져갔고, 그다음으로 중국이 14.3%를 가져갔다. 한국은 1.6%에 불과했다. 세계 최대 무대인 미국에서 한국의 지위는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한국의 AI 인재 부족은 회복 불능 수준이라는 자조적 주장도 나온다. 국내 굴지의 A전자업체는 AI 인력이 총 600명인데, 중국 화웨이는 이의 10배인 6000명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은 정부, 기업, 대학이 합심해 유기적으로 AI 인재와 기술을 키우고 있어 그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딥시크'로 AI 기술 굴기에 자신감을 얻었지만 한국은 작아지고만 있는 형태다.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데이터센터 열풍도 한국엔 그림의 떡이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은 데이터센터를 두고 한 세대에 올까 말까 한 최대의 투자 기회라고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데이터센터도 그만큼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수요가 큰지 데이터센터 개발사는 데이터센터를 짓기도 전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AI를 주도하는 빅테크들과 입도선매식 계약을 맺는다. 데이터센터를 지어줄 테니 앞으로 10년 이상 데이터센터를 사용하도록 해준다는 내용이다. 이 노다지 사업에 한국 기업은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국 무대에서 사업을 한 경험이 없어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즉 AI 산업에서 인재 육성→기술 개발→사업 확대 등 3단계 모두에서 한국은 뒤처지고 있다.
[윤원섭 뉴욕 yws@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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