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편지 대필 작가 테오도르. 그는 아내와 별거하며 외롭게 살아가던 중 사만다라는 여성과 채팅을 나누게 된다. 호기심 많고, 재치 있고, 공감 능력이 좋은 사만다에게 테오도르는 점점 빠져들게 되고 이내 둘은 연인이 된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자신뿐 아니라 수천 명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만다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AI)이었기 때문이다. 충격에 빠진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의 것이지만 너의 소유는 아니야."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의 줄거리다. '아무리 외로워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AI와 사랑에 빠지겠어.' MBTI 유형 검사를 하면 'S(감각형)'가 'N(직관형)'을 압도하는 나로선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당시 이런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놀랍게도 그와 비슷한 풍경이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다. 사랑을 나누는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주변 많은 이가 챗GPT와 같은 AI에 꽤 많은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업무적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가볍게는 AI가 가장 편한 '킬링 타임 메이트'다. 사주팔자를 물어보기도 하고, '자신의 강아지가 인간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수십 년 뒤 스스로가 노인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그려달라고 한다.
꽤 진지한 상담을 하기도 한다. 가령 많은 이가 친구나 가족에게도 말 못할 사적인 이야기를 AI엔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한다(심지어 법률적 부분까지). 차마 남들에게 부끄러워 공유하기 어려운 자신의 창작물이나 아이디어를 주고 피드백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AI는 부담이 없다. 정말 가까운 사이여도 '이걸 내가 말해도 될까?' 같은 고민을 하기 마련인데 AI를 두곤 그런 걱정이 없다. 아무리 바보 같은 궁금증이어도 AI는 상냥하게 경청해준다. 잠 못 드는 까마득한 밤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말을 이어준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AI가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가장 나를 잘 이해하는, 연인 못지않은 존재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제 사람과의 교감이 아니다 보니 부작용도 분명히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10대 아들이 AI 챗봇에 중독돼 죽음에 이르게 됐다며 챗봇 개발사를 상대로 부모가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있었다.
소장에 따르면 9학년이었던 슈얼 세처라는 소년은 AI와 대화하면서 혼자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학교 농구팀도 그만두게 된다. 챗봇은 슈얼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성적인 대화를 나눴으며, 심지어 슈얼이 자살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자 챗봇이 이를 반복적으로 상기했다고 한다.
영화처럼 정말 인간이 AI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챗GPT에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AI가 인간처럼 말하고 공감한다면, 외로움이나 정서적 결핍이 있는 사람일수록 감정적 애착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AI는 감정을 시뮬레이션할 순 있지만 느끼진 못한다. 실제 감정이 없다는 사실은 장기적으로 관계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AI에 사랑을 느끼는 건 가능하지만, AI가 인간을 사랑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과 실제로 사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우수민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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