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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달러 패권 뒤흔드는 ‘디지털 위안’ [홍익희의 비트코인 이야기]

(2) 워싱턴은 ‘토론’하지만 베이징은 ‘실행’한다

  • 홍익희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2025.05.09 13:09:03
  • 최종수정:2025.05.09 1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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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워싱턴은 ‘토론’하지만 베이징은 ‘실행’한다

2012년, 미국이 국제금융결제망(SWIFT)에서 이란을 ‘배제’한 사건은 세계 금융 패권의 민낯을 보여줬다. 미국은 SWIFT를 무기로 사용했고, 그 충격파는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러나 가장 경각심을 갖고 이 사태를 지켜본 국가는 이란도 유럽도 아닌 중국이었다.

중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결제 주권’ 확보에 본격 나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2015년 독자적인 국제 결제망인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를 출범시켰다. 해당 시스템은 단순히 결제 메시지를 주고받는 SWIFT와 달리, 메시지 전송에 더해 실질적인 결제와 청산까지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한 결제 인프라였다.

여기에 ‘디지털 위안’을 결합시킨 중국은 SWIFT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기존 시스템에서 며칠이 걸리던 국제 결제를 단 7초 만에 끝내고, 수수료도 98% 줄이는 기술력을 보여줬다. 특히 홍콩-아부다비 간 실험 거래 성공 사례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이는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닌 지정학적 대결 구도를 뜻했다.

전 세계 나라별 최대 교역국을 나타낸 지도. 빨간색은 중국, 파란색은 미국, 오렌지색은 독일이다.
전 세계 나라별 최대 교역국을 나타낸 지도. 빨간색은 중국, 파란색은 미국, 오렌지색은 독일이다.

기술-전략의 결합 ‘디지털 실크로드’

세계 최고 수준 보안성 어필…실용성↑

중국은 CIPS라는 결제 인프라를 단지 금융 영역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일대일로(BRI)’라는 초국가적 인프라 네트워크와 접목하는 중이다. 2023년 10월 열린 일대일로 국제 포럼에는 150개 나라와 30개 국제기구가 참여했다. 중국은 여기서 무역·금융 거래에 디지털 위안 결제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실크로드’다.

여기에 위성항법 시스템과 양자암호 통신망까지 접목시키며 무역·물류·금융을 하나의 디지털 생태계로 통합하려 한다. 중국은 이미 베이징-상하이를 연결하는 4600㎞ 규모 양자암호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보안 통신망을 실현하고 있다. 이는 향후 디지털 위안 결제 보안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되며, 각국이 디지털 위안망에 참여할 유인을 제공한다.

양자암호 통신·위성항법 시스템과 같은 첨단 인프라와 디지털 위안 결합으로, 중국은 디지털 무역 인프라 효율을 기존보다 400% 향상시켰다고 주장한다. 실제 적용 사례도 있다. 유럽 한 제조 업체는 북극항로 물류비를 디지털 위안으로 결제했고, 중동 에너지 기업은 중국 결제망을 사용해 결제 수수료를 75% 절감한 바 있다. 이는 실용성 측면에서 이미 디지털 위안이 국제적 선택지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3년, 중국 내 무역·자본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은 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0%에 가까웠던 위안화 결제는 48.3%까지 치솟았고, 반대로 달러는 83%에서 46.7%로 주저앉았다. 중국뿐 아니다. 2024년에는 아세안(ASEAN) 지역 위안화 결제 규모(약 5.8조위안)가 3년 만에 120% 급증했다. 단순 통계, 그 이상의 의미다. 바로 ‘탈달러화(De-Dollarization)’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디지털 위안이 여기 기폭제 역할을 하는 중이다. 러시아와는 전체 무역 90%가 위안-루블 직거래로 전환됐고, 태국에서는 디지털 위안을 이용한 석유 거래가 실제 이루어졌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 등도 외환보유고에 위안화를 적극 편입 중이다.

이러한 흐름은 달러 일극 체제에 구조적인 균열을 가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 금융 신뢰성과 유동성 측면에서 달러가 우위에 있지만, 통화 사용의 다변화는 분명 달러의 절대적 지위를 흔들어대는 모습이다.

디지털 위안이 갖는 또 다른 강점

사용 기한·목적·지역 등을 프로그래밍

세계 최대 교역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겨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현재 140개국 이상이 중국을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삼고 있으며, 이는 미국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위안은 ‘직접 결제’를 가능케 해, 거래 효율을 극대화하고 달러 의존도를 낮춘다.

특히 석유·원자재 거래에서 달러가 아닌 위안으로 결제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브릭스를 비롯해 중동과 아프리카 자원국이 핵심이다. 외환 시장에서도 위안화 직거래가 확대되고 있으며, 디지털 위안은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디지털 위안의 힘은 국제 거래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국 내부에서 통화 정책 운영 방식에도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예전에는 경기 부양 시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지금은 인민은행이 개인 전자지갑에 직접 디지털 위안을 지급할 수 있다. 심지어 사용 기한, 목적, 지역 등을 사전에 프로그래밍할 수 있어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 정밀하게 돈을 뿌릴 수 있다.

이러한 ‘미세조정 능력’은 디지털 화폐만이 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동시에 모든 거래가 기록되기 때문에 자금 흐름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는 부패 방지, 재정 통제, 세수 확보에 큰 기여를 한다. 이미 몇몇 지방정부는 공무원 급여를 디지털 위안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향후 세금 환급 등 다양한 영역에서 디지털 위안이 주 통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디지털 위안의 핵심 쟁점은 바로 ‘프라이버시’ 문제다. 모든 디지털 위안 지갑은 신원 정보와 연계돼 있고, 중앙은행은 필요시 거래를 추적할 수 있다. 중국은 ‘제한적 익명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결국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로 귀결된다.

사용자 편의를 강조하며 소액 결제의 익명성은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궁극적으로 중앙은행이 모든 거래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은 서구 가치관과 충돌한다. 이는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 화폐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디지털 위안은 국가 주도의 중앙 통제형 모델이다.

지정학적 대결로 번지는 디지털 위안

러시아·이란 등 미국 제재국과 인프라 공유

디지털 위안은 이제 국제 통화 그 자체를 넘어 지정학적 무기가 됐다. 중국은 러시아·이란 등 미국 제재 대상국과 금융 인프라를 공유하며, 미국이 만들어온 달러 기반의 동맹 체계를 재편하고 있다.

이는 경제 협력과 함께 중국판 ‘통화금융 블록화’를 의미한다. 미국 선택과는 정반대 전략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들어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비국가 중심 대응 전략을 선택했다.

이제 글로벌 통화금융 흐름은 하나의 질서가 아닌, 양대 진영의 경쟁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향후 글로벌 금융 질서는 미중 양 진영의 패권 경쟁과 표준 경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CBDC 협의체, ISO 국제표준, 금융 보안과 프라이버시 논쟁 등 모든 전선에서 이념의 충돌이 시작됐다.

디지털 위안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국가 전략이자 지정학 도구, 그리고 미래 통화금융 질서의 향방을 가르는 게임 체인저다. 중국은 기술력, 실행력, 경제 규모를 앞세워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세계는 이 흐름에 적응하거나 저항하거나, 양쪽을 병행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은 이 지형 속에서 독자적인 CBDC 전략을 마련하고, 글로벌 금융 질서 변화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형 CBDC는 양쪽 진영을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하다.

디지털 위안은 세계 중앙은행들에 경쟁의 촉매제가 됐고, 달러 중심 질서에 전환의 사인을 심었다.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시점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과연, 어떤 모델이 새로운 글로벌 금융 질서의 중심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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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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