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부자가 운전기사도 없었다. 경호원도 없었다.
“행운을 빕니다(Good Luck. Guys)”라고 말하더니 차를 직접 운전하고 떠났다.
2007년 초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워런 버핏을 만났을 때 얘기다. 함께 공부하던 미시간대 MBA 학생 몇 명과 함께 오마하를 찾았다.
당시 버핏은 빌 게이츠 MS 창업자와 세계 최고 부호 1, 2위를 다투던 때였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3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 요청을 대부분 고사했다. 그러나 젊은이들과의 만남은 늘 열어놨다. 그날도 2시간에 걸친 강연과 질의응답을 거쳐 ‘고라츠(Gorat’s) 스테이크’라는 단골집에서 점심을 함께한 후 학생들과 일일이 어깨동무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직접 운전을 하고 떠났다.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이란 별칭다웠다. 그는 투자 ‘기술’을 전수하려 하지 않았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얘기했다.
어디에 투자해야 하냐는 질문에 ‘너 자신에게 투자해야 가장 수익률이 높다’고 대답했고, 어떤 직업이 좋냐는 질문엔 ‘돈보다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할 일을 택하라’고 답했다. ‘10년 보유할 주식이 아니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는 정도가 그나마 기술적인 답변이었다.
‘성공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화도 있었다. 홀로코스트에서 목숨을 걸고 유대인들을 숨겨준 사람들 얘기를 언급했다. “세상에는 자신을 숨겨줄 사람이 없는 백만장자들이 많다. 심지어 자식조차도 ‘그는 다락방에 있어요’라고 말할 만한 사람도 있다”고 답했다. “성공은 사랑하는 사람들, 즉 가족과 친구가 당신을 사랑하느냐로 판단할 수 있다.” 20년이 지나도 기억나는 말이다.
지난주 버핏이 은퇴 선언을 했다. 60년간 CEO 생활을 단 한 번의 추문 없이 마무리했다. 제이미 다이먼이나 빌 게이츠 등의 찬사엔 공통적으로 ‘진실성’ ‘낙관주의’ ‘유머 감각’ 등의 표현이 있다. 돈에 투자하지 않고 인생에 투자했기에, 유머와 긍정이 넘쳤기에, 60년 현역의 마지막이 행복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 한국엔 존경받는 투자자가 없을까.
워런 버핏은 두말할 나위 없는 위대한 투자자다. 그런데 ‘60년 해피엔딩’은 미국 증시였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부인할 순 없다.
60년간 버크셔해서웨이는 550만%의 수익률을 거뒀다. 1만원을 투자했다면 5억5000만원이 됐다는 뜻이다. 엄청난 수치지만 버핏이 권하는 또 다른 방법대로 미국 S&P500지수만 투자했어도 3만1223%로, 1만원 투자 시 312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한국 코스피에 투자했다면 25만원이다. 차이가 크다.
특유의 낙관적인 철학이 미국 증시와 맞아떨어진 셈이다. 실제 버핏은 미국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자궁에서도 미국에 태어나겠다고 협상할 것이다.”
한국 역시 축복받은 나라다. 지난 60년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러나 주식은 그저 바닥이었다. 부실한 감시 제도와 미흡한 주주환원이 이유다.
절친이자 세계 최고부자 1위를 다퉜던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는 재산의 99%를 기부하기로 했다. 이런 사람들이 리드하는 사회이기에 주식 시장의 환원 정책도 발전해왔던 것 같다.
버핏의 행복한 은퇴는 개인의 훌륭한 철학과 공동체의 성장이 맞물린 결과다. 투자는 개인과 국가의 2인 3각이란 뜻이다.
다음 세대엔 한국서도 이런 모습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개인도 노력해야지만 제도가 바뀌어야 가능한 얘기다.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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