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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 ‘CBDC’ vs 민간 ‘스테이블코인’ [홍익희의 비트코인 이야기]

(6) 디지털 통화 패권은 어디로

  • 홍익희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2025.04.25 10:57:17
  • 최종수정:2025-04-26 2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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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디지털 통화 패권은 어디로

전 세계에 CBDC(Central Bank Digital Cur rency) 실험 열풍이 불어닥쳤다. 국제결제은행(BIS) 연례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중앙은행 중 93%가 CBDC에 관한 연구개발을 시행 중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를 뜻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조금 다른 분위기가 포착된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CBDC 개발을 금지하고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향후 중국을 필두로 한 CBDC와 미국 중심 민간 분야 스테이블코인 사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국가가 통제하는 CBDC는 통화 주권을 위해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배척할 가능성이 크다. 바야흐로 ‘디지털 통화 패권 전쟁’이 열리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디지털 화폐의 발전 방향은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가능하면 CBDC와 스테이블코인 양쪽을 모두 포용하는 새로운 기술의 통화 운용 시스템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BDC 개발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BDC 개발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P=연합뉴스)

현금에서 진짜 디지털 화폐 시대로

CBDC, 예금토큰 그리고 스테이블코인

지폐와 동전이 자취를 감추고, 어느덧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모든 걸 결제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쓰는 각종 간편페이와 카드 결제는 따지고 보면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화폐는 아니다. 단순히 본인 계좌와 스마트 기기가 연동돼 있을 뿐이다.

전 세계는 그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인 CBDC다. 간편결제나 온라인 뱅킹 같은 기존 디지털 화폐와 다른 점은 ‘은행’의 역할에 있다. CBDC에서는 상업은행, 즉 중간 금융기관 역할이 최소화된다. 한국은행도 그 흐름에 올라타 올해 4월부터 3개월 동안 CBDC와 예금토큰을 결합하는 실험에 돌입했다. 한국은행이 기관용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면 테스트에 참여하는 은행 등 기관들이 지급결제 수단으로 토큰(예금토큰)을 발행하고 금융 소비자가 이를 결제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최근 디지털 결제망에서는 세 가지 주체가 부상 중이다.

첫 번째는 CBDC다.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로 통화 주권과 금융 안정이 핵심 목표다. 둘째, 예금토큰이다.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기존 예금의 디지털 버전으로 이해하면 쉽다. 마지막으로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로, 주로 달러 등에 연동돼 디지털 자산 거래나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널리 사용된다.

문제는 이 세 가지 통화가 서로 완전히 다른 기술과 규칙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CBDC는 보안과 통제를 강화한 추적 가능한 디지털 화폐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개인 프라이버시와 익명성을 중시하는 추적 불가능한 통화다. 예금토큰은 그 중간에 위치한다. 이미 마련된 금융 인프라와 블록체인 기술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뉴욕 연방준비제도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세 종류 화폐가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공존 가능한지다. 이른바 ‘프로젝트 RLN’이라고 부르는 실험이다. 예금토큰을 통해 상업은행 역할을 살리고, 동시에 CBDC 신뢰와 유통 가능성을 확보하며, 나아가 스테이블코인까지 흡수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통화 시스템을 구상했다.

‘왜 스테이블코인을 포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창의성과 기술 혁신은 민간에서 나온다는 판단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담보물 대부분이 미국 국채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미국 정부 입장에선 좋다. 달러 패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성장 전망은 굉장히 높이 평가된다. 현재 2000억달러 시장 규모가 2028년에는 2조8000억달러 규모까지 커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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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디지털 화폐 전략은?

CBDC·스테이블코인 모두 포용해야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은 디지털 화폐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까?

첫째, 우리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을 양립 가능한 존재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CBDC는 공공성과 안정성, 스테이블코인은 속도와 확장성에서 각자 장점이 뚜렷하다. 어느 하나로 모든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 예금토큰도 마찬가지다. 기존 금융과 연결성 면에서 그 역할이 중요하다.

둘째, 3개 디지털 통화를 하나의 블록체인 기술 기반 분산원장 안에 통합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미국 프로젝트 RLN처럼, CBDC·예금토큰·스테이블코인을 같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운용하는 구조가 이미 제시됐다. CBDC 발행은 단순한 금융 실험을 넘어선다. 디지털 시대의 통화 질서를 설계하는 일이다. 누가 어떤 자산을 발행할 수 있고, 어떤 네트워크에서 교환되며, 사용자 정보는 어떻게 보호되는가에 대한 국가적 답안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한국은행이 지금 실험하는 CBDC 모델은 단순히 중앙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금토큰을 활용해 은행 역할을 살리고, 스테이블코인을 포용할 수 있는 설계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나름 선진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셋이 경쟁하면서도 상호 운용되고, 균형을 유지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가올 미래에는 하나의 통화만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디지털 화폐가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하며 발전할 것이다. 한국이 그 디지털 화폐 삼국지의 질서를 설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우리가 만드는 디지털 화폐 실험장은 단지 기술 검증이 아니라, 게임의 판을 바꾸는 무대가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CBDC가 스테이블코인을 포용해 한 네크워크에서 운용되더라도, CBDC는 근본적으로 추적 가능한 디지털 화폐다. 개인 프라이버시에 위협을 준다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앞으로 디지털 화폐 시대에 프라이버시 보호는 핵심 화두가 될 것이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단순히 추적 불가능한 디지털 화폐를 통제하려 들 것이 아니라, 익명성과 투명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기술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제를 정비하고 법적 제도를 하루빨리 완비해 창의성과 혁신이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민간 분야의 추적 불가능한 스테이블코인이 주체가 돼 CBDC를 포용할 수는 있는 방법도 논의된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규제 샌드박스’다. 정부는 젊은 스타트업이 마음대로 실험하고 혁신할 수 있는 실험용 모래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는 디지털 화폐 패권을 좌우할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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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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