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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정담] 슬기로운 유튜브 생활

  • 노원명
  • 기사입력:2025.04.23 17:31:43
  • 최종수정:2025-04-23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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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가 시간을 많이 들이는 유튜브 콘텐츠는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이 장기 연재 중인 '한국인의 탄생'이다. 함 원장이야 이름난 학자지만 그가 이렇게 강의를 잘하는 줄은 몰랐다. 매회 큰 주제를 다루면서도 공부면 공부, 재미면 재미 어느 쪽도 소홀함이 없다. 필생의 연구와 노하우가 집대성됐을 이 콘텐츠를 단돈 1원도 내지 않고 몰아 보는 것이 살짝 미안하다.

입주 15년이 넘어가면서 아파트 방문 손잡이들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부르면 최소 10만원이다. 아내는 교체용 손잡이를 주문하고, 나는 유튜브에서 '문 손잡이 교체'를 검색했다. 수도 없이 많은 콘텐츠 중에서 집의 손잡이와 똑같은 모양으로 찍은 것을 눌렀다. 따라 하는 것이 아주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성공! 이런 종류의 성취감을 맛본 적이 거의 없다. 유튜브는 문과생을 기술자로 만든다. 그 요술램프 안에 철물점 아저씨의 생계를 위협하는 무수한 지니들이 살고 있다.

검색어 없이 자동 알고리즘 설정으로 유튜브 쇼츠를 본다. 돌돔회 뜨는 칼잡이가 나오고 아기 불독들이 낑낑거리고 무하마드 알리가 로프에 기대 상대 힘을 빼고 있다. 수도 없이 본 카테고리들이다. 그런데 여자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도움닫기는 왜 나온단 말인가. 나는 육상경기를 좋아할 뿐 글래머인 여자 선수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가 내 취향을 무례하게 넘겨짚고 있다. 억울하다.

유튜브가 세상에 선보인 지 23일로 20년이 됐다. 이 영악한 미디어는 TV에 비해 압도적으로 풍성하고 접근성이 높고 유능하지만 동시에 압도적으로 위험하다. 길을 잘못 들면 알고리즘이라는 그물망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는데도 24시간이 부족하다. 구텐베르크 이후 당신이 읽는 것이 당신이었던 시대가 오래 지속됐다. 유튜브 시대에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가 당신이다. 그 알고리즘에 얕보이지 말자. 코인팔이 음모론자들이 추천 영상으로 뜬다면 지나온 인생을 돌아볼 때가 된 것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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