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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탐욕이 부른 '싱크홀' 지하개발 재정비 시급

  • 한우람
  • 기사입력:2025.04.21 17:24:10
  • 최종수정:2025-04-21 17: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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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J R R 톨킨의 판타지 소설로 실사영화 제작 뒤에도 공전의 히트를 했던 '반지의 제왕'에는 난쟁이 '드워프'족이 등장한다. 드워프족은 거대한 지하도시 '크하잣둠'을 건설한 뒤 번영을 누렸다. 크하잣둠에 묻혀 있는 신비의 귀금속 '미스릴'을 캐내 얻은 부(富) 덕분이다.

탐욕은 시대와 종족을 막론하고 동일했다. 이미 누리고 있는 번영에도 만족하지 못한 드워프족은 더 많은 미스릴을 캐내기 위해 계속해서 더 깊은 곳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그렇게 파 내려간 땅굴 속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악마 '발로그'를 마주쳤다. 드워프족은 본인들의 탐욕 때문에 재앙을 만났다. 악마에 저항해 맞서 싸우던 드워프족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고, 번영하던 지하도시 크하잣둠은 폐허가 됐다.

최근 서울, 부산을 비롯해 전국 대도시에서 빈발하는 '땅꺼짐(싱크홀)' 현상 때문에 난리가 났다. 공간 활용을 높이기 위해 땅속을 파고 깔았던 상하수도관이 노후화된 데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하철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부실 시공이 이뤄진 것도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상하수도관을 깔고 지하철을 건설하는 일은 분명 '탐욕'은 아니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이뤄진 일이다. 하지만 상하수도관을 깔기만 하고 이후 정비·보수를 소홀히 하는 것은 엄연히 '탐욕'이다.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건설비를 아끼고 작업 편의에만 치중해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것 역시 '탐욕'이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도시들은 1970년대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이후 지하공간 활용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활용할 줄만 알았지 이를 관리하는 데 비용을 써야 한다는 인식은 낮았다. 탐욕이 인도하는 손쉬운 길을 따라가다 지하의 '악마'를 만나기는 '크하잣둠'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인 형국이다.

최근 만난 도시계획 전문가는 "지하철 공사 중인 도로는 피해 가는 것이 상책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 하수관 중 50년 이상 된 노후 하수관 길이만 3300㎞에 달한다. 서울시청과 부산시청 간 도로(400㎞) 대비 8배가 넘는 길이다. 하지만 서울시 예산으로는 한 해에 고작 100㎞의 하수관로 정비만 가능하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수도인 자카르타 시가지 전체가 심각한 지반 침하 이슈에 직면하게 되자 우리 돈으로 40조원을 들여 천도에 나섰다. 우리의 선택은 어느 쪽인가. 천도인가, 아니면 전면 재정비인가.

[한우람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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