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지인이 보낸 카드를 받았다.
펜으로 꾹꾹 눌러쓴 손편지다. 정성이 느껴졌다.
긴 편지 중엔 ‘작은 것에도 더 많이 감사하겠노라 마음을 다잡는다’는 대목이 있었다.
세상에 평화를 주기 위해 아기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 신과 인간의 정성을 묵상하기 좋은 시즌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국내외 언론엔 다른 한 손편지가 보도됐다.
‘그리운 조선, 정다운 아버지 어머니 품을 떠나 여기 로씨아(러시아) 땅에서 생일을 맞는…’으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사살된 북한군 품에서 발견된 메모다. 죽은 ‘정경홍’이 친구인 ‘송지명’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라고 우크라이나 측은 설명했다. 배우자나 자녀가 아니고 부모를 그리워하는 점을 볼 때 미혼의 젊은이 같다. 17~18세에 군에 입대하는 북한이니 소년군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먼 이국땅에서 전쟁의 이유라도 알고 생을 마감했을까.
예전에 탈북자와 관련된 칼럼을 쓴 적이 있다(10월 21일자 ‘오늘 당신의 하루가 노벨상의 실증’). 환경에 따라 극과 극으로 변한 탈북자의 모습이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의 이론에 연상됐기 때문이다. 두만강을 건너고 인신매매를 피한 처절한 사투를 벌인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로스쿨이나 MBA를 나와 화목한 가정을 꾸린 모습이 인상 깊었다. 탈북의 그 짧은 순간이 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상상해본다. 저 ‘정경홍’이 한국에 있었다면.
2024년 성탄절에 여느 한국 청년처럼 가족,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여러 번 봤다. 멋모르고 전쟁에 참여해 희생되는 소년병을 그린 작품이다. 독일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는 미국에서 1930년, 1979년에 제작됐고 2022년엔 독일서 다시 만들어 아카데미 4개 부문 상을 받았다.
영화는 주인공 파울 보이머가 전쟁을 미화하는 교사와 사회 분위기에 친구들과 자원입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친구들은 신이 나서 노래하며 전장으로 향하지만 참혹한 전장에서 한 명 한 명 희생된다. 소설엔 파울 보이머가 편지 쓰는 대목이 있다. 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음식과 식탁에서 신문 보는 아버지를 회상한다. 북한 병사도 이렇게 손편지를 썼을 것이다.
파울은 살아남기 위해 적군을 칼로 찔러 죽이고는 옆에 누워 울먹이며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 전쟁의 참혹함에 소년은 치를 떤다.
그러나 영화 속 전쟁 지휘부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지옥 같은 전장과 달리, 화려한 만찬에 와인을 마시며 휴전을 아쉬워한다.
현재 북한은 추가 파병을 검토한다고 한다. 체제 유지를 위해 청년들을 더 희생시키려는 것 같다.
성탄절, 한국의 또래 청년들에게 큰 뉴스는 입시였다. ‘SKY 등록 포기한 수시 합격자 3888명’이 제목이다.
추운 이국땅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청년과, 대학과 미래를 그리며 성탄을 보낸 청년의 차이는 단 하나다. 수십 년 전 부모, 조부모가 어떤 선택을 했었냐는 것.
한국전쟁 전후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 영웅들의 선택은 수십 년 뒤 한국의 평화를 만들었다. 공산주의의 거짓 선전을 꿰뚫어보고 후대를 구한 혜안이었다.
감사의 손편지가 한국과 러시아에서 차갑게 엇갈린 건 그때였다.
혹시 지금 우리는 어떤가. 수십 년 뒤 후대의 흥망을 가르는 선택을 목전에 둔 것은 아닌가.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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