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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정말 땅속에서 울었을까

  • 이덕주
  • 기사입력:2020.11.02 15:01:02
  • 최종수정:2020-11-03 09: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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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은 전류 전쟁에서는 실패했지만 사업과 역사의 기록에서는 승리를 거둡니다. /사진=커런트워 UK페이지
에디슨은 전류 전쟁에서는 실패했지만 사업과 역사의 기록에서는 승리를 거둡니다. /사진=커런트워 UK페이지
[중기야사-53] 혹시 지난 5월 미국 대표적 제조업체인 GE(제너럴일렉트릭)가 전구 사업을 접고 이를 다른 회사에 팔았다는 뉴스를 보셨나요? 우리에게 전구를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기업이 바로 GE입니다. 기업의 모태가 되는 사업을 매각했다는 점에서 이 기사는 GE라는 회사의 몰락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이는 LG그룹이 모태인 치약과 화장품 사업을 매각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 소식을 들은 에디슨은 땅속에서 울었을까요? 이번 중기야사는 조명 산업(혹은 전구 산업)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토머스 에디슨은 전구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처음 만든 1879년 이미 비슷한 형태의 전구가 발명되었지만 에디슨은 전기를 이용해서 전구로 불을 밝히는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전구와 관련된 각종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서 이를 사업화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전구 사업을 토대로 GE는 미국 최고 전자회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발명된 전등(electric light)은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놨습니다. 전등이 등장하면서 기존에는 기름, 양초, 가스로 어둠을 밝혀야 했던 인류는 어둠을 정복하고 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 조명이 연료를 연소하는 과정을 통해서 열과 빛을 만들어냈다면, 전등을 통해 우리는 전기를 바로 빛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한 전구가 처음으로 발명되었지만 전구는 계속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1910년에는 텅스텐 전구가 발명돼 전구의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1930년대에는 GE에 의해 형광등이 상업화되었습니다. 형광등은 백열전구에 비해 수명도 길고 백색을 낸다는 점에서 쓰임새가 많았습니다. 할로겐등, 아크등과 같은 다양한 전등이 있었지만 조명 산업의 주류를 차지한 것은 백열전구와 형광등이었습니다.

네온등도 형광등의 일종이었습니다. /사진=유키카 유튜브
네온등도 형광등의 일종이었습니다. /사진=유키카 유튜브
긴 역사를 가진 전자회사들을 보면 대부분 전구 사업에 몸담았습니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전자회사 필립스의 경우 1891년 전구회사로 시작했고 독일의 세계적 기업인 지멘스도 초기부터 전구를 판매했습니다. 지멘스의 경우 1919년 오스람이라는 전구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GE와 마찬가지로 필립스와 지멘스도 지금은 전구 사업을 분사시켰습니다. 이를 그룹 핵심 사업이 아니라는 판단으로 별도의 회사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필립스의 경우 2018년 조명 사업을 시그니파이라는 회사로 분사시켰습니다. 이 회사는 여전히 '필립스' 전구라는 브랜드를 쓰고 있지만 필립스 에어프라이어를 만드는 회사와는 완전히 별도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오스람의 경우 2013년 지멘스에서 분리되었는데 오스람에서도 일반 조명 사업은 2016년 레드밴스라는 이름으로 또 분사되었습니다.

GE, 지멘스, 필립스에서 떨어져나온 회사들의 공통점은 바로 조명으로 쓰이는 전구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즉, 가정이나 공공시설(가로등, 경기장) 등에서 사용되는 전구를 만드는 사업이라는 점입니다. 같은 전구를 만든다고 해도 자동차나 다른 B2B 분야 조명은 분사시키지 않았습니다. 오스람의 경우 전구 사업은 분사시켰지만 자동차용 조명과 LED 제조 사업은 그대로 영위하고 있습니다.

LED는 1970년대부터 혁명적인 조명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현실화까지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사진=1970년대 12월17일자 동아일보
LED는 1970년대부터 혁명적인 조명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현실화까지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사진=1970년대 12월17일자 동아일보
미리 답을 말씀드리자면 전구와 조명 산업을 바꿔놓은 것은 LED의 등장입니다. 필라멘트 전구의 등장이 기존 조명 산업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처럼 LED의 등장이 전체 조명 산업을 바꿔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 먼저 우리나라 조명 산업의 역사를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도 20세기 근대화를 거치면서 백열전구가 들어왔습니다. 1887년 고종이 경복궁에서 최초로 전기를 사용해서 궁을 밝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920년대에는 경성의 가정에도 백열전구가 보급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명기업은 '번개표'로 알려진 금호전기입니다. 이 회사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청엽제작소라는 이름의 수도미터 생산회사로 시작했는데 광복 후 대한금속계기로 이름을 바꾸고 1963년부터 '번개표' 전구를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마포산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76년 금호그룹에 인수되었고 현재는 금호그룹에서 분리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당시만 해도 이미 전자 산업의 총아는 전등에서 반도체와 가전제품으로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조명용으로 쓰이는 전구는 이미 성장이 완료된 시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서 가정용 조명 산업이 크게 성장한 계기가 있었는데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아파트의 보급입니다. 표준화된 집단거주시설인 아파트에는 많은 조명이 필요했고 전구를 만드는 회사들 입장에서는 큰 시장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필립스, 오스람 같은 외국계 전구회사들도 이때 국내에 진출했습니다.

오래가는 오스람이라는 광고를 했던 이 회사는 지금은 레드밴스가 되었습니다. /사진=유튜브
오래가는 오스람이라는 광고를 했던 이 회사는 지금은 레드밴스가 되었습니다. /사진=유튜브
아파트는 한국만의 독특한 조명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가정을 방문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한국처럼 백색(주광색) 천장등을 사용하는 집은 매우 드뭅니다. 서양에서는 조명을 간접등으로 쓰는 경우가 많고 백색등보다는 백열전구 같은 노란빛 조명이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최대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한국 아파트는 천장에 백색 형광등을 쓰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신병원'처럼 보일 정도로 한국에는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간접등이나 주백색·전구색 등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LED는 Light Emitting Diode의 약자로 발광다이오드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빛을 내는 반도체'라고 합니다. 우리가 LED에 전기를 가하면 이는 빛에너지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명 수단으로 LED는 백열전구나 형광등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먼저 에너지효율이 높습니다. 같은 전기에너지라도 백열전구나 형광등보다 더 많은 빛을 내서 전력 소모가 줄어듭니다. 또 백열전구나 형광등에 비해 훨씬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 가지 색을 내는 전구에 비해 전구색, 주백색, 주광색 등 다양한 색을 낼 수 있습니다. 가스나 수은 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백열전구나 형광등에 비해 LED는 친환경적이기도 합니다. 백열전구나 형광등이 유리램프 형태인 데 반해 LED는 칩 형태이기 때문에 꼭 램프 형태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런데 LED가 처음 발견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이고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LED가 실제 조명으로 사용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바로 청색 LED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LED는 기본적으로 단색의 빛을 낸다고 합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빛을 내는데 이 중 파란색 LED를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술 시간에서 배웠던 것처럼 흰색 빛을 만들려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을 섞어야 하는데 파란색 빛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흰색 LED 조명등이 등장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카무라 슈지의 일화는 일본의 뒤쳐진 기업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진=발명진흥회
나카무라 슈지의 일화는 일본의 뒤쳐진 기업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진=발명진흥회
결국 1993년 일본 니치아사에서 일하던 나카무라 슈지가 다른 일본인 교수들과 함께 고효율의 청색 LED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LED 조명의 신세계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그 공로로 2014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LED의 등장이 불과 10년 만에 우리의 삶을 얼마나 많이 바꿔놨는지를 보여줍니다. LED는 먼저 TV나 휴대전화 LCD의 조명용으로 쓰이면서 전자제품 시장을 크게 바꿔놨습니다. 자동차 전조등이나 전광판 등에도 쓰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백열등과 형광등을 대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LED는 단순한 '조명'을 넘어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GE, 오스람, 필립스 등이 가정용 전구 사업을 분리하게 된 것은 이처럼 조명 시장 패러다임이 LED로 변하면서 나타났습니다. 전구에서 이 회사들이 가지고 있던 리더십은 사라지고 이 회사들도 새로운 업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이 강조되고 기존 전구를 LED 조명으로 전환하는 추세가 강해지면서 조명 산업은 더욱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LED를 사용하면서 전기를 아낄 수 있고, 유해한 물질도 사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스닥 상장사인 서울반도체가 만드는 반도체는 'LED’입니다. /사진=서울반도체
코스닥 상장사인 서울반도체가 만드는 반도체는 'LED’입니다. /사진=서울반도체
이 과정에서 나카무라 슈지가 몸담고 있던 일본 니치아, 미국의 크리(스마트글로벌홀딩스), 한국 서울반도체, 중국 MLS 등이 LED 칩 생산 부문의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물론 기존 전구회사들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스람은 전구 부문은 분리시켰지만 LED 칩 생산에서 여전히 강자이고, 필립스는 루미레즈라는 LED 회사를 세워서 차량용 조명과 LED 칩 제조 사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오스람도 루미레즈도 현재는 지멘스나 필립스와는 독립된 회사입니다. 결국 전구·형광등 중심이었던 조명 제조 산업은 LED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어가고 있고 그중에서도 LED 칩 제조 사업, 이 칩을 바탕으로 자동차나 TV 등 B2B용 LED를 제조하는 사업, 가정용 LED 조명 제조 사업으로 분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GE나 필립스, 지멘스는 본사에서 조명 산업을 분리시켰고, 그중에서도 가정용 조명은 따로 분리시켰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아마도 자동차나 TV 등에 사용되는 LED나 가정용 LED가 완전히 시장이 다르고 같은 회사에 있다고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GE가 전구 사업을 분리시킨 것은 기술 발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구 사업이 GE의 모태이고 상징적인 사업이라고 해도 이미 기술 리더십을 잃은 상황에서는 이를 분리시켜서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에디슨은 땅속에서 울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앞으로 사람들은 전구보다는 LED에 더 익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구는 LED 형태로 앞으로도 계속 쓰이겠지만 필라멘트와 같은 단어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힐 것 같습니다.

[이덕주 벤처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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