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말 발명된 전등(electric light)은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놨습니다. 전등이 등장하면서 기존에는 기름, 양초, 가스로 어둠을 밝혀야 했던 인류는 어둠을 정복하고 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 조명이 연료를 연소하는 과정을 통해서 열과 빛을 만들어냈다면, 전등을 통해 우리는 전기를 바로 빛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한 전구가 처음으로 발명되었지만 전구는 계속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1910년에는 텅스텐 전구가 발명돼 전구의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1930년대에는 GE에 의해 형광등이 상업화되었습니다. 형광등은 백열전구에 비해 수명도 길고 백색을 낸다는 점에서 쓰임새가 많았습니다. 할로겐등, 아크등과 같은 다양한 전등이 있었지만 조명 산업의 주류를 차지한 것은 백열전구와 형광등이었습니다.

GE, 지멘스, 필립스에서 떨어져나온 회사들의 공통점은 바로 조명으로 쓰이는 전구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즉, 가정이나 공공시설(가로등, 경기장) 등에서 사용되는 전구를 만드는 사업이라는 점입니다. 같은 전구를 만든다고 해도 자동차나 다른 B2B 분야 조명은 분사시키지 않았습니다. 오스람의 경우 전구 사업은 분사시켰지만 자동차용 조명과 LED 제조 사업은 그대로 영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세기 근대화를 거치면서 백열전구가 들어왔습니다. 1887년 고종이 경복궁에서 최초로 전기를 사용해서 궁을 밝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920년대에는 경성의 가정에도 백열전구가 보급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명기업은 '번개표'로 알려진 금호전기입니다. 이 회사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청엽제작소라는 이름의 수도미터 생산회사로 시작했는데 광복 후 대한금속계기로 이름을 바꾸고 1963년부터 '번개표' 전구를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마포산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76년 금호그룹에 인수되었고 현재는 금호그룹에서 분리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당시만 해도 이미 전자 산업의 총아는 전등에서 반도체와 가전제품으로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조명용으로 쓰이는 전구는 이미 성장이 완료된 시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서 가정용 조명 산업이 크게 성장한 계기가 있었는데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아파트의 보급입니다. 표준화된 집단거주시설인 아파트에는 많은 조명이 필요했고 전구를 만드는 회사들 입장에서는 큰 시장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필립스, 오스람 같은 외국계 전구회사들도 이때 국내에 진출했습니다.


LED는 기본적으로 단색의 빛을 낸다고 합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빛을 내는데 이 중 파란색 LED를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술 시간에서 배웠던 것처럼 흰색 빛을 만들려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을 섞어야 하는데 파란색 빛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흰색 LED 조명등이 등장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GE, 오스람, 필립스 등이 가정용 전구 사업을 분리하게 된 것은 이처럼 조명 시장 패러다임이 LED로 변하면서 나타났습니다. 전구에서 이 회사들이 가지고 있던 리더십은 사라지고 이 회사들도 새로운 업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이 강조되고 기존 전구를 LED 조명으로 전환하는 추세가 강해지면서 조명 산업은 더욱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LED를 사용하면서 전기를 아낄 수 있고, 유해한 물질도 사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GE가 전구 사업을 분리시킨 것은 기술 발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구 사업이 GE의 모태이고 상징적인 사업이라고 해도 이미 기술 리더십을 잃은 상황에서는 이를 분리시켜서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에디슨은 땅속에서 울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앞으로 사람들은 전구보다는 LED에 더 익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구는 LED 형태로 앞으로도 계속 쓰이겠지만 필라멘트와 같은 단어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힐 것 같습니다.
[이덕주 벤처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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