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NXP 등 현지 대규모 투자
테스트·패키징 생태계 고도화
하이브리드 전략 ‘포스트 대만’ 부상

싱가포르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핵심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가 후공정과 전력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실리콘카바이드(SiC)를 앞세워 ‘6번째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세계 반도체 산업은 미국·대만·한국·중국·일본이 주도한다. 미국은 칩 설계(팹리스), 대만은 위탁생산(파운드리), 한국은 메모리 중심의 종합 반도체 체계를 구축해왔다. 중국은 내수 시장과 정부 주도 전략을, 일본은 소재·부품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싱가포르가 후공정과 전력반도체를 앞세워 차세대 생산 거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3일 외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부 산하 과학기술연구청(ASTAR)은 최근 세계 최초로 200㎜(8인치) 산업용 실리콘카바이드(SiC) 오픈형 연구개발(R&D)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 라인은 소자 제조부터 패키징, 테스트까지 전 공정을 통합한 개방형 플랫폼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공동 개발과 상용화 실증을 한곳에서 수행할 수 있는 구조다. 싱가포르가 차세대 전력반도체의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독일 센트로썸, 프랑스 소이텍, 일본 도레이, 네덜란드 ASM을 비롯한 글로벌 소재·장비 기업이 협력사로 참여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차세대 반도체와 첨단 패키징 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총 10억 싱가포르달러(약 1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특히 첨단 패키징을 포함한 반도체 후공정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단순한 조립 공정이었던 후공정이 이제는 고성능 반도체의 품질과 완성도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격상되면서 국가 전략의 중심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다. 성능 테스트와 패키징을 포함한 반도체 후공정은 제조비용 비중이 20~30%에 불과하지만, 고부가가치 공정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싱가포르 투자도 줄을 잇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은 싱가포르 우드랜즈에 약 10조2200억원을 투자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전용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기존 낸드 생산기지를 고급 메모리 패키징 시설로 확대하는 것으로,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1위 기업 NXP는 대만 VIS와 합작해 10조원 이상을 들여 싱가포르에 신규 반도체 팹을 설립한다. 이 팹은 연간 5만5000장 규모의 12인치 웨이퍼 생산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VIS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의 자회사다. 이 밖에도 글로벌파운드리는 40억달러(5조5000억원)를 투입해 신규 제조시설을 만들었고, 대만 UMC도 7조3300억원을 들여 반도체 양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방향은 뚜렷하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파운드리(위탁생산)에 집중하고, 미국은 엔비디아, 퀄컴, AMD 등 설계(팹리스)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메모리를 중심으로한 종합 반도체 체계를 구축했다. 싱가포르는 공정 후단과 고사양 장비 중심의 기술집약형 산업 구조에 집중하며 ‘하이브리드 허브’ 전략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김현재 연세대 교수는 “미·중 갈등 속에 오히려 싱가포르가 반도체 핵심 거점으로 각광받고 있다”며 “정치적 안정성과 아시아 경제 허브라는 입지, 우수 인재풀 등 여러 강점을 동시에 갖춘 나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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