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들 매장에서 유난히 눈에 띈 것은 곳곳에 설치된 헌 옷 수거함과 친환경 정책 안내문이었다. 새 옷을 구매하는 고객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져온 장바구니에 담은 헌 옷을 수거함 앞에서 직원에게 전달하거나 친환경 정책을 안내하는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유럽 자라와 H&M, 일본 유니클로 등 글로벌 SPA 브랜드들은 중고품을 활용한 신제품 생산, 중고품 거래 활성화를 통해 '한번 입고 버리는 옷' 이미지를 빠르게 벗어던지고 있다.
스페인 패션업계 관계자는 "유럽의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환경 이슈와 관련해 패스트패션 불매 움직임까지 나타나자 주요 브랜드들이 지속가능성을 주요 사업 전략으로 설정하고 실천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유로모니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패션·럭셔리 산업 전문가의 40% 이상이 "향후 5년 동안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에 투자하는 것이 회사의 전략적 우선순위"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을 기반으로 급성장한 쉬인, 샵사이다 등 중국 브랜드들이 과잉 생산으로 환경을 파괴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글로벌 브랜드들은 친환경 투자를 늘리며 차별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유럽연합(EU)에서 의류·섬유 폐기물 비용을 기업이 부담하게끔 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추진되면서 기업들은 이 같은 변신에 속도를 냈다.

자라를 보유한 글로벌 1위 SPA 기업 인디텍스는 2016년부터 중고 의류를 수거한 후 재사용·재판매해 비영리단체에 수익금을 전달하는 '테이크 백(Take Back)'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13만5000t 이상의 의류, 액세서리, 신발 등이 수거 및 기부된 것으로 집계됐다.
생산과정에서도 친환경 전환이 이뤄졌다. 지난해 인디텍스 제품에 사용된 섬유의 33%는 재활용 소재로 전년(18%) 대비 비중이 크게 늘었다.
스웨덴 H&M그룹은 유럽 주요 매장에서 '프리 러브드(Pre-Loved)' 섹션을 운영해 고객들이 직접 품질이 보장된 중고 의류를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전 세계 H&M 매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중고 플랫폼 셀피(Sellpy)를 통해서도 선별된 중고 컬렉션을 판매하고 있다.
다니엘 에르베르 H&M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사업보고서에서 "지속가능성은 우리의 최우선 과제이며, 운영 방식의 핵심이자 장기적 성공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유럽 브랜드뿐만이 아니다.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이 운영하는 유니클로는 10개 넘는 국가에서 매장 내 '리유니클로 스튜디오'를 통해 수선·리메이크·업사이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이 중고 다운 제품을 매장에 기부하면 이를 재활용해 새 제품으로 만들고 있다.
이와 함께 저렴한 의류를 대량 생산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품질이 우수하고 내구성이 높은 제품과 유행을 덜 타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등 '슬로패션' 요소를 도입하는 추세다. 자라는 1년에 두 번 선보이는 프리미엄 라인 '스튜디오 컬렉션'으로 브랜드 이미지 고급화에 나섰다. H&M 역시 '프리미엄 셀렉션'이라는 라인을 통해 캐시미어, 실크, 가죽 등 고급 소재를 사용한 타임리스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카를 라거펠트, 잔니 베르사체 등의 유명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럭셔리 영역까지 오가며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유니클로는 일본이 낳은 대표적 패스트패션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입을 수 있는 '궁극의 일상복'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최고 소재 기술력을 갖춘 도레이와 협업해 내구성이 뛰어난 '퍼프테크 아우터웨어'로 히트텍에 이어 또다시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유니클로의 고객 맞춤형 서비스 '커스텀 오더'도 관심을 끈다.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슈트를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맞춤 제작 양복' 서비스다. 매장에서 전문 스태프가 총기장과 소매기장을 측정해주며, 주문 후 2일 이내 배송을 시작한다. 유니클로에서 기존에 판매하는 '감탄 재킷'과 동일한 가격대인 약 10만원에 구매가 가능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이와 함께 유니클로는 '일부러 가고 싶은 매장'이라는 콘셉트 아래 2020년부터 일본 내 일부 매장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매장이 단순히 옷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중요한 일부가 돼야 한다는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들은 최근 소비 침체를 뚫고 강력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자라를 보유한 인디텍스와 유니클로를 보유한 패스트리테일링은 지난해 각각 7.5%, 12.2%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마드리드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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