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온 모습이다. 수년째 포화 우려가 이어져온 편의점 산업이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 올해 1분기 국내 편의점 매출이 처음으로 역성장했고 지난해에는 사상 최초로 점포 수가 감소했다. 고물가에 소비 심리 위축이 겹치며 지지부진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편의점 업계도 위기를 모를 리 없다. 매출과 수익성 방어를 위해 저마다 ‘혁신 카드’를 빼들었다. 점포 리뉴얼과 지원책 마련,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부가 수익 증대 등 점주 이탈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다.


통계가 보여주는 ‘편의점 위기’
1분기 매출 ‘역성장’…통계 이래 처음
편의점 위기는 통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매년 성장을 이어온 점포 수가 처음으로 꺾였고 전년 대비 분기 매출도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편의점 매출은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 하락폭이 크지는 않지만 방향이 꺾였다는 사실 자체가 업계에는 충격이다. 통계 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2년만 해도 편의점은 10.8% 고성장을 유지해왔다. 2023년(8.1%)과 지난해(4.3%)에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며 백화점 전체 매출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하지만 올 들어 상황이 반전됐다. 백화점과 편의점 매출 비중 차이는 지난해 0.1%포인트에서 올해 3월 1.1%포인트로 다시 벌어졌다.
편의점 매출 하락은 점포 수 감소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국내 편의점 매장 수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10년 1만7000여개였던 편의점 수는 해마다 급증하며 2021년 5만개를 돌파했다. 하지만 2022년 들어 증가세 둔화가 이어졌고 2023년 5만4880개에서 올해는 5만4852개로 28개 감소했다. 국내 편의점 산업이 싹을 틔운 1988년 이후 3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CU와 GS25는 점포 수 증가를 이어갔지만 업계 3·4위인 세븐일레븐(785개)과 이마트24(271개) 점포 수가 전년 대비 줄었다. 양 사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년 대비 감소하는 등 부진이 두드러진다.
CU와 GS25도 웃지 못한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4.5%, 10.9% 감소했고 증권가에서 내놓는 1분기 실적 전망도 흐리다.
남성현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예상보다 점포 수 순증 속도가 빠르게 줄고 있고 기존점 매출 회복도 요원한 상황”이라며 “올해 편의점 업황 부진이 계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편의점 위기의 원인은
이미 포화…재계약 종료 대거 도래
최근 편의점 위기 요인은 복합적이다. 고물가가 장기화되며 소비 심리 자체가 쪼그라들었고 생활밀착형 업종 특성상 탄핵 사태 등 사회 이슈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관계자 중론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년째 계속돼오고 있는 ‘편의점 포화설’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는 의견이다. 그간 과도한 출점 경쟁으로 편의점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너무 많은 매장 탓에 점포당 매출 감소로 폐업이 불가피한 시점이 도래했다는 목소리다.
포화설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보면 더 그렇다. 일본 인구수는 우리나라 두 배가 넘지만 지난해 편의점 점포 수는 약 5만7000개로 한국보다 오히려 적다. 편의점의 가장 큰 장점인 ‘접근성’도 점점 희미해지는 중이다. 1시간 내 빠른 배송, 이른바 ‘퀵커머스’ 플랫폼이 급성장하면서 근거리 쇼핑 수요가 잠식되는 와중이다.
점주 한 명이 여러 개 점포를 운영하는 ‘투자형 점주’가 이탈하는 모습도 편의점 위기론에 힘을 싣는다. 지난 2014년 30%를 웃돌았던 편의점 평균 다점포율(전체 가맹점 중 다점포 점주 운영 매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년 만인 지난해 18.3%까지 떨어졌다. 점포를 여러 개 운영 중인 기존 점주가 수익이 감소하면서 점차 편의점 매장을 정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점포 수 전망은 유독 더 어둡다. 점포 수가 가장 폭발적으로 늘어난 2015년과 2016년에 생겨난 편의점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온 탓이다. 편의점 계약은 기본 5년 단위인데, 점주가 재계약을 거부하는 경우는 2가지다. 다른 편의점 브랜드로 갈아타든지, 아니면 폐업이다. 최근에는 갈아타기보다 폐업을 선택하는 점주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와 내년 무더기 폐업을 예상하는 이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는 점포 수가 급증한 해로부터 10년째 되는 해다. 2013년과 2014년 증가한 매장 수가 2000개를 밑도는 반면, 2015년과 2016년에는 7700개가 넘는 편의점이 새로 생겼다.
편의점을 여러 개 운영하는 한 다점포 점주는 “점포당 매출이 줄고 인건비가 늘면서 오토 매장을 운영할 유인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엔 재계약을 앞둔 점포를 놓고 편의점 본사가 경쟁적으로 입찰하는 분위기도 강했는데, 요즘엔 본사 재정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이 같은 추세도 사라지는 중”이라며 “최근엔 신도시 개발 저조로 편의점이 새로 들어갈 상권도 생겨나지 않아 점포 수가 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위기의 편의점, 생존 키워드는
리뉴얼·특화 상품·외국인 고객
편의점 업계 스스로도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올해부터는 매장 수를 늘려나가기보다는 ‘질적 성장’을 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게 편의점 4사의 공통된 전략이다. 노후 점포와 부진 점포를 리뉴얼하고 점주 지원과 추가 매출 증대를 통해 점주 이탈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CU는 점포 개선 프로젝트인 ‘점프업’에 집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점프업은 CU가 지난 2016년부터 진행해온 프로젝트로 시설 노후·운영 미숙 등으로 집중 관리가 필요한 가맹점에 제공하는 맞춤형 솔루션이다. 시설·인테리어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상품 확대와 진열 관리로 매출 증대를 꾀하는 전략이다.
올해는 유독 더 힘을 쏟는다. 지원 예산을 50% 늘리고 프로젝트 참여 점포도 기존보다 50% 확대하기로 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총 125페이지에 달하는 점포 개선 통합 가이드북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집기·진열대·카운터·휴게 공간 등 80여개 세부 항목을 점검해 점포 리뉴얼에 나서기로 한 것. 유휴 공간을 활용한 쇼케이스, 주류 특화 코너 도입 등 내부 리모델링부터 외벽 도색과 간판 교체, 테라스 설치 같은 외부 환경 정비까지 포함한다. 성과도 있다. 지난해 점프업 프로젝트에 참여한 약 800개 점포 매출은 전년 대비 20.1% 올랐다.
세븐일레븐도 점포 리뉴얼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생각은 매한가지다. 지난해 10월 선보인 신규 콘셉트 매장 ‘뉴웨이브’가 중심에 있다. 뉴웨이브는 현대인 소비 트렌드에 맞춰 상품 구성을 바꾸고 모던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도입한 모델이다. 올해 3월 뉴웨이브대전둔산점을 가맹 1호점으로 열었고 올해 점포를 두자릿수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매장 내 구색도 다양해진다. 카운터를 푸드코트형으로 조성한 ‘푸드스테이션’, 과일과 계란 등 장보기 고객을 위한 ‘신선 특화존’에 이어 최근 편의점 새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패션·뷰티 상품도 늘리기로 했다. 뷰티 코너는 뷰티 전문점 분위기를 연출하는 전용 진열대를 별도 구성했다. 최근에는 데일리 패션 아이템 ‘세븐셀렉트 티셔츠’를 PB(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선보였고 조만간 양말 제품인 ‘세븐셀렉트 컬러팝 삭스’도 판매할 예정이다.
점주 지원을 늘려 이탈을 막겠다는 전략도 나왔다. GS25는 점주 복지를 위한 ‘상생 지원안’ 항목을 올해 대폭 늘리기로 했다. 상생 지원안은 2017년 GS25가 업계 처음으로 선보인 개념이다. 휴양 시설 이용, 해외 연수 제공, 법률 자문 서비스, 경조사 지원, 상생 대출 등을 마련해놨다.
올해는 ‘가맹비 할인 제도’를 신설했다. 만 18세 미만 자녀가 2인 이상인 경우 가맹비 200만원을 깎아준다. 여기에 기존 ‘GS히어로 포상 제도’ 대상을 점주와 근무자에서 점주 가족으로까지 확대해 최대 100만원 상당 포상을 주기로 했다. 이 밖에도 의료 종합 제휴 업체 ‘세이프닥’과 협업해 15개 비급여 의료 항목에서 최저가 혜택과 예약 편의를 새로 지원한다. 물가 인상으로 크게 오른 상품 원가를 고려해 점주 재산종합보험 최대 보상 한도를 기존 3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상향했다.
고물가 속 ‘가성비’ 트렌드를 앞세운 신제품 라인업으로 승부수를 던진 편의점도 있다. 이마트24는 올해 초 초저가 콘셉트 PB ‘상상의 끝’을 내놨다. 올해 1월 ‘1900김밥’과 ‘3600비빔밥’을 시작으로 ‘2900짜장면’ ‘2900덮밥’ ‘2200치즈버거’ 등 초저가 먹거리를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지금까지 총 11종이 나왔는데, 이 중 8종이 해당 카테고리 내 판매 수량 1등을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CU도 비슷한 전략이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선보여온 1000원 이하 상품군을 늘려가기로 했다. CU는 880원 컵라면, 990원 스낵, 990원 가공유 등 제품이 올해 4월 기준 730만개가 넘는 누적 판매고를 올렸다. 올해에도 업계 최저가인 1000원 삼각김밥을 10원 더 낮춘 990원 삼각김밥 등을 계속 내놓고 있다.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덩치 싸움은 사실상 끝났다. 매출 우수점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상품과 특화 매장을 얼마나 트렌디하게 내놓을 수 있는지가 앞으로 경쟁의 관건”이라며 “온라인 부가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자체 앱 활성화, 또 상품 판매를 넘어선 생활 서비스 확대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내수 시장 한계 극복을 위해 외국인 고객 유치도 중요하다. 편의점 업계는 최근 외화 환전·세금 환급을 넘어 비자 대행 서비스까지 내놓고 있다”며 “외국인 특화 서비스는 점포 매출을 높일 수 있을뿐더러 편의점 업계 해외 진출을 위한 이미지 제고에도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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