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장도 뜯지 않고 버리는 풍요와 하루 생활비 1.9달러의 절박함이 공존하는 시대. 실천윤리학의 거장이자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 피터 싱어가 빈곤 해방 방법을 제언한 책이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나왔다. 책은 2009년 처음 출간된 이후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참여한 ‘더 기빙 플레지’ 서약을 끌어내는가 하면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재단을 설립하는 등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바 있다.
책은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를 예로 들며 시작한다. 출근 중 작은 연못에 빠져 허우적대는 어린아이를 봤다면 당장 물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할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고작 옷과 신발이 더러워지고 한두 시간 지각하는 것 때문에 아이 생명을 저버린다면 누구도 이를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저자는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지구촌 현실이라고 말한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신발이 젖는다고, 지각한다고 죽어가는 아이를 모른 채 방치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푼돈이나마 자선단체에 기부하지 않고 커피, 외식, 최신 스마트폰, 명품 가방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 써버리는 바람에, 구할 수 있었던 아이를 방치해버린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이어 소비를 약간 줄이는 것만으로도 굶주린 아이를 여럿 구할 수 있다며 독자들에게 도덕적 책임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이후 10년 동안 전 세계의 극심한 빈곤을 줄이는 데 극적인 진전이 이뤄졌다면서도 여전히 전 세계 수백만명이 하루 1.9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가난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만큼 개개인이 자신의 지역과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 빈곤에 관심을 갖고 고통을 완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눈앞에서 물에 빠져 죽는 아이에게는 민감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무관심한 ‘도덕적 거리감’을 극복하라는 주문이다. 이어 소비 습관을 돌아보고 효과적으로 기부함으로써 빈곤한 사람의 삶을 개선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특별히 이번 개정증보판은 출간 후 10년간 새로 발생한 사례들과 최근 현황을 반영해 상당 부분 새로 썼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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