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앤컴퍼니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이 야심 차게 인수한 한온시스템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급락한 데다 향후 전망도 불안해지자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 고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한온시스템 영업이익 급감
캐즘으로 전기차 판매 둔화 영향
한온시스템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955억원. 1년 새 65.5% 감소했다. 2020년(3158억원)과 2021년(3257억원) 각각 3000억원을 넘는 넉넉한 영업이익을 냈지만 몇 년 새 수익이 급감했다. 2023년엔 58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는데, 지난해 3586억원 당기순손실로 돌아섰다. 지난해 매출은 9조9987억원으로 1년 새 4.5% 늘어날 정도로 외형은 커졌지만 수익성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부채비율도 지난해 280%까지 치솟으면서 재무 구조가 악화됐다. 불어난 이자비용도 부담이다. 한온시스템은 지난해 3분기 누적 이자비용만 1952억원을 지출했다. 전년 동기보다 48.4%(637억원) 급증했다.
한온시스템이 실적 부진에 빠진 것은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글로벌 전기차 판매 둔화 영향이 크다. 글로벌 열관리 솔루션 기업이라 전기차 판매가 줄어들면 실적에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한온시스템은 지난해 상반기 50여개 해외법인 중 절반을 넘는 27개 법인이 적자를 냈다. 멕시코법인 손실 규모만 559억원에 달했고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법인 손실도 컸다.
올해 실적 전망도 불안하다. 현대차증권은 1분기 한온시스템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8.7% 감소한 335억원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 관세 영향으로 한온시스템 수익성 악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한온시스템 목표주가를 기존 6500원에서 5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김창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한온시스템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2026년까지 순적자 구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온시스템 실적 부진이 심상찮으면서 조현범 회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 한국앤컴퍼니그룹이 한온시스템을 인수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지난해 10월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보유한 한온시스템 지분 23%(구주 1억2277만주)를 주당 1만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구주 거래대금은 약 1조2277억원이다. 추후 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로 발행하는 신주 역시 모두 인수했다.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한온시스템 지분 54.77%를 보유한 대주주로 올라섰다. 한온시스템 인수를 통해 한국앤컴퍼니그룹은 글로벌 자산총액 26조원을 달성해 국내 재계 30대 그룹에 진입했다.
한온시스템은 전 세계 차량용 열관리(공조) 시장에서 일본 덴소에 이어 점유율 2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파워트레인 쿨링, 컴프레서, 열 교환기, 전자 유압 등 열관리 제품을 생산한다. 정부가 산업기술보호법에 근거해 한온시스템의 열관리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정해 보호할 만큼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한온시스템 인수로 타이어, 배터리 등에 이어 자동차 열관리 시스템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자동차부품그룹으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핵심 계열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한온시스템은 기술력, 공급망 등에서 시너지를 극대화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신차용 부품(OE·Original Equipment) 사업의 완성차 브랜드 파트너십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온시스템 해외 공장 통폐합하나
실적 회복 가능할지 관심
하지만 기대와 달리 한온시스템 실적 부진이 지속되면서 조현범 회장은 고심 끝에 칼을 빼들었다. 조 회장은 최근 경영전략회의를 주재하고 “한온시스템의 과거 오류, 잘못된 관행을 정확히 분석, 개선해 향후 3년간 어떻게 혁신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당장 지금부터 모든 구성원이 절박한 심정으로 프로액티브(Proactive)하고 적극적인 혁신을 실행하자”고 주문했다.
특히 해외 실적 부진이 지속되자 전 세계 50여개 공장 중 상당수 공장의 통폐합을 추진 중이라는 후문이다. 앞서 한국앤컴퍼니그룹은 한온시스템 조직 개편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중국, 미국, 유럽 4개 지역에 실행 중심의 ‘지역 비즈니스 그룹(Regional Business Group)’을 신설했다. 각 그룹에는 기존 글로벌 헤드쿼터(HQ)에서 맡고 있던 영업과 제품기획, 생산, 품질관리, 구매, 재무 등 비즈니스 관련 주요 기능이 분할 이관된다. 각 지역 본부장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의사결정, 커뮤니케이션을 신속·원활하게 해 시장별 현지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부품 관세 정책에 맞춰 한온시스템의 해외 공장 통폐합, 생산시설 재편 계획이 머지않아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한편 이와 관련, 업계가 시끄러워지자 한온시스템 측은 “관세 정책 등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고 사업 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해 국내외 공장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으나 세부 사항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온시스템뿐 아니라 한국앤컴퍼니그룹 핵심 계열사인 한국타이어 경영 전망도 불투명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자동차 부품에 25% 관세를 강행하면서 한국타이어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커졌다.
지난해 기준 한국타이어의 북미 매출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미국 판매량 중 25%를 현지에서 생산하는데 나머지 75%는 한국(30%), 인도네시아(45%)에서 만들어 수출한다. 국가별 상호관세가 일시적으로 유예되기는 했지만 머지않아 현실화되면 한국은 25%, 인도네시아는 32% 관세를 내야 한다.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타이어는 한국 공장 외에도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 관세 타격이 크다”고 진단했다.
한국타이어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관세 폭탄에 대비해 미국 테네시주 공장의 연간 생산량을 내년 상반기까지 550만개에서 1200만개로 늘리기 위해 증설을 진행 중이다. 최대한 현지 공장 증설 속도를 앞당길 계획이지만 관세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한국타이어가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위해 유럽 수출 물량을 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타이어의 지난해 4분기 유럽 시장 매출은 1조800억원으로 전년 동기(7910억원) 대비 36.5% 증가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4분기 유럽 기준 고인치 타이어 매출 비중을 전체의 39.3%까지 늘렸다.
그럼에도 미국 비중이 커서 실적 방어에 한계가 나타나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귀연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천연고무 등 원자재 가격이 높아진 데다 운임도 불안해 한국타이어의 1분기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한온시스템 연결 실적을 반영하면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여파로 한국타이어 실적 전망이 불안한 상황에서 어렵게 인수한 한온시스템 실적까지 발목을 잡을 우려가 커졌다. 조현범 회장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업계 전문가 A의 귀띔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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