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신영증권 지하에 위치한 아트살롱드아씨 갤러리는 생동하는 봄을 맞아 ‘생명’과 ‘인간’을 주제로 여성 작가 네 명의 릴레이 전시 ‘Sous les projecteurs, 스포트라이트 아래의 네 명의 여성 작가’를 진행하고 있다. 4월 15일부터 5월 3일까지는 그중 3번째 기획전시인 이상미 작가의 ‘Pour moi, 안녕?’ 전시가 열린다.
이상미 작가는 서울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베르사유 국립고등미술학교(Ecole des Beaux-Arts de Versailles)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이후 홍익대 판화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숙명여자대 초빙교수, 경기대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이 작가는 최근 몇 년간 ‘열매’ 연작에 몰두하고 있다. ‘열매’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가 있다. 베르사유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언니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이후 엄마도 혈액암에 걸려 오랜 기간 투병했다. 면역력이 약한 혈액암 환자들은 익힌 음식을 소량씩만 먹을 수 있다. 익히지 않고 먹어야 하는 과일은 꿈도 못 꾼다. 어느 날 엄마가 그녀에게 “요즘 수박이 나오는지” 물었다. 그리고 혼자 내뱉듯 던진 한마디.
“수박 한 조각만 먹으면 병을 다 떨치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날 작업실에 와서 한참을 울다 크레파스로 수박 한 조각을 그렸다고. 그날부터 작가에게 과일은 생명을 의미하게 됐고 수박 한 조각을 시작으로 사과, 복숭아, 체리 등 다양한 열매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과일에서 시작한 ‘생명의 열매’ 시리즈는 이후 ‘먹음직스러운 케이크 한 조각 위에 올려진 체리 한 알’ 식으로 변주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시작한 ‘생명의 과일’은 이제는 작가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상징으로 발전했다.
“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누군가의 생명이 깨지지 않기를, 신체의 항상성이 영원히 유지되기를, 그리하여 삶이 안정적으로 오래 지속되기를 염원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한 조각의 열매가 신체를 통과하면서 ‘몸의 안녕(physical stability)’을 이끌어내잖아요. 그런 열매의 성장이 삶의 상처와 회복을 차곡차곡 쌓아 단단해지는 저의 작업 과정과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이 작가는 “관람객이 그림을 보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안녕 괜찮아?’라는, 그림이 건네는 조용한 안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들려준다.
[문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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