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25 23:51:42
자녀를 미국 명문 하버드대에 유학 보낸 학부모들이 일단 한숨 돌리게 됐다. 미국 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에 대해 외국인 학생 등록을 차단한 조치의 효력을 중단시켰다.
23일(현지시간) 앨리슨 버로스 매사추세츠 연방법원 판사가 전날 미국 국토안보부에서 내린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 취소의 효력을 중단해 달라는 하버드대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이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버로스 판사는 “가처분이 인용되지 않으면 모든 당사자로부터 의견을 들을 기회가 있기 전에 즉각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입게 될 것임을 원고 측이 충분히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미국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에 따라 하버드대는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SEVP 인증 자격을 일단 원래대로 복구할 수 있게 됐다. SEVP는 유학생 비자 등을 관리하는 국토안보부의 프로그램으로, 대학들은 SEVP 인증을 받아야만 외국인 학생이 학생 비자 등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보증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앞서 전날 국토안보부는 하버드대가 법을 준수하지 않음에 따라 SEVP 인증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은 하버드대가 소장을 제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나왔다. 법원의 이번 가처분 인용은 하버드대와 구성원의 ‘즉각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손해’ 등을 고려한 임시 조치다. 이에 따라 본안 소송에서 국토안보부와 하버드대 간 치열한 법률적 다툼이 예상된다.
양측 모두 물러설 움직임이 없어 연방대법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칼 터바이어스 미국 리치먼드대 법학과 교수는 “뉴잉글랜드 지역 법원은 전통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비판적이지만, 대법원에선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이 하버드대를 관할하는 매사추세츠주 선거인단을 가져갔다. 반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보수 6명, 진보 3명 등 보수 우위로 구성돼 있어 최종 결과가 불투명하다.
법원이 제동을 걸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추진력을 알고 있는 대학가는 불안에 떨고 있다. 대학 총장들은 연방정부의 단 한 번의 조치로 외국인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NYT는 전했다. 샐리 콘블루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총장은 교내 구성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지금은 중대한 시간”이라고 밝혔다. 웬디 헨셀 하와이대 총장도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대해 “고등교육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존 오브리 더글라스 UC버클리대 선임연구원은 NYT에 “하버드대가 당장 피해자이긴 하지만 (이번 조치는) 모든 주요 대학의 자율성을 약화하려는 적대적인 정부의 전례 없는 시도이자 경고”라고 말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다른 대학에 대해서도 하버드대와 유사한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현실화하면 대학 재정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NYT에 따르면 학부와 대학원을 합쳐 미국 내 유학생이 가장 많은 곳은 일리노이공대다. 재학생 중 51%가 외국에서 왔다. 카네기멜런대(44%), 컬럼비아대(40%), 존스홉킨스대(39%), 뉴욕대(NYU·37%), 캘리포니아공대(32%), 시카고대(31%), 보스턴대(30%) 등도 유학생 비중이 높다. 미국 비영리 국제교육자협회(NAFSA)에 따르면 2023∼2024학년도에 110만여 명의 유학생이 미국 경제에 기여한 경제적 규모는 약 430억달러(5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부분 수업료와 주택 자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SEVP 인증 전격 취소의 이유로 ‘중국 공산당과의 협력’을 들면서 하버드대 자산인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가 트럼프 시대에는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이날 전했다. 작년 기준으로 하버드대 외국인 학생 중 약 5분의 1은 중국 국적자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예전부터 하버드대에서 중국 정부 영향력이 크다는 우려가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연방의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하버드대는 너무나 오랫동안 중국 공산당이 하버드대를 이용하도록 내버려뒀다”며 “중국 공산당 지령으로 캠퍼스에서 자경단이 (조직적) 괴롭힘을 벌이는데도 (하버드대는) 못 본 척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워싱턴DC 소재 주미 중국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중국과 미국 사이의 교육 교류와 협력은 서로 유익한 일”이라며 “부정적인 낙인을 찍을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정조준하면서 미국 내 중국 국적 유학생들은 항공편을 취소하고 임시 숙소로 피신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번 법원 판결 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미국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이들 국가가 학생 교육에 전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며 그럴 생각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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