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3 16:00:00
트럼프 복귀 후 국경 강화 정책 박 일반 관광객·사업가 구금·추방도 빈번 英·獨, 자국민 대상 ‘美 여행 주의 경보’ 올해 美 여행객 전년 대비 9% 감소 예상 캐나다 두드러져…美항공권 예약 70% 감소 ‘팬데믹 경제 회복’ 뒷전…2029년 정상화 전망 “미국을 국제사회 외면받는 국가로 만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법체류자 차단을 위한 국경 강화 정책은 첫 임기 시작 직후인 2017년부터 본격화했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물리적 장벽 건설(Build the Wall)’을 추진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이후 불법체류자는 물론 일반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속 강화에 이어 2020년 팬데믹을 기점으로 미 입국자와 이민자들에 대한 단속을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올해 1월 시작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는 이민 정책과 국경 단속 강화, 고강도 관세 전쟁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 국경에서 발생하는 잦은 마찰이 생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직후 국경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구금되거나 추방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제로 국경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해 한 달 넘게 구금되거나 하루 동안 억류 뒤 귀국 명령을 받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안에 불법이민자 100만명을 추방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럽 영사관 관계자는 “미 입국 절차가 한층 더 엄격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미 정부가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블룸버그에 전했습니다.
미 정부의 국경 단속은 이제 더 이상 불법체류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강화된 심사는 이들을 넘어 평범한 관광객, 학회 참석자, 사업가들까지 겨냥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단속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피해자들 사례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일각에서는 미국을 방문하고자 하는 해외 여행객 수가 벌써부터 감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영국은 지난달 미 여행 대상자들을 상대로 주의 경보를 내렸습니다. 미 정부가 자국 입국 규칙을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는 만큼 규칙 위반 시 체포·구금될 수 있어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같은 달 독일 정부 역시 자국민 3명 등이 미 입국 과정에서 체포되는 일이 벌어진 이후 미 여행자에 대한 경보를 강화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인 약혼녀와 함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려던 한 독일 국민은 관광이 아닌 거주 목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미 ICE에 의해 16일간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 여행 감소 움직임은 특히 캐나다에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항공정보업체 OAG 에비에이션 월드와이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가는 항공권 예약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0% 감소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캐나다 국민들의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과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유럽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수십개의 호텔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 호텔 그룹 어코르 SA에서 올해 여름을 위한 유럽 관광객의 미국 호텔 예약 건수는 2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 국민들은 미국 대신 캐나다·남미·이집트 등을 새로운 여행지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국민들 역시 미국이 아닌 멕시코·유럽 등으로의 여행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같은 심리를 파악한 일부 항공사들은 미국 노선 운항을 점차 줄여가고 있습니다.
세바스티앙 바쟁 어코르 SA 최고경영자(CEO)는 “미 입국 과정에서 구금되는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유럽인들이 여행지로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올해 3월 기준 독일과 스페인 국민들의 미국 방문은 이미 전년 대비 각각 28%, 25%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행조사업체 투어리즘 이코노믹스는 올해 미국을 찾는 해외 여행객이 전년 대비 9.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캐나다 국민들의 미국 방문은 20%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 같은 예상이 현실로 다가오면 미국은 여행객 소비 지출 부문에서 90억달러(약 13조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 세계를 덮쳤던 팬데믹 종료 이후 경제 회복을 꿈꿨던 미국 입장에서 단속 강화는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투어리즘 이코노믹스는 당초 팬데믹 침체 이후 올해부터 미국을 찾는 해외 여행객 수가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 국경 단속 강화 정책 등으로 인해 2029년이 돼서야 미 여행 수요가 되돌아올 것으로 전망을 바꿨습니다. 이 같은 관측이 현실로 다가오면 오는 2026년 미국·멕시코·캐나다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월드컵과 2028년 미국이 개최하는 올림픽도 흥행 부진 등 악영향에 휘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 삭스 투어리즘 이코노믹스 사장은 “이렇게 되면 팬데믹으로 인한 충격의 완전 회복까지 사실상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되는 셈”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은 여행·관광 산업 측면에서 미국을 국제사회에서 외면받는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반 여행객과 사업가 등에 대한 엄격한 단속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미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여행·관광 산업이 미 경제에 기여한 금액은 2조3000억달러(약 326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또 약 9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해외 여행객은 미 경제에 필수적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미국의 한 이민 전문 변호사는 “관련 정책들로 결국 이득을 얻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뿐”이라며 “대통령 후보 시절 내세웠던 정책을 실제로 실행하는 인물은 본인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