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생 동갑내기로 '잊힌 천재'로 사라질 뻔했던 어맨다 아니시모바(미국)와 세계랭킹 1위로 승승장구하다 금지약물 적발 이후 부진에 빠졌던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이 둘은 이번에는 '우승'이라는 똑같은 목표를 내걸고 녹색의 잔디 위에서 마지막 승부를 펼친다.
세계랭킹 4위 시비옹테크는 11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인 윔블던 4강전에서 35위 벨린다 벤치치(스위스)를 2대0으로 완벽하게 제압하고 결승 무대에 올랐다. 앞서 경기를 펼친 아니시모바는 세계 1위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에게 2대1 승기를 거두며 생애 첫 메이저대회 결승 진출의 쾌거를 일궈냈다. 이들이 펼칠 결승전은 13일 0시에 시작된다.
아니시모바를 아는 테니스 팬은 많지 않다. 아니시모바는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의 주인공'으로 꼽힌다. 하지만 과거를 보면 결코 반짝 성적이 아니다. 아니시모바는 10대 시절엔 최고 유망주로 꼽혔다. 2017년 US오픈 주니어 여자단식 결승에서 코코 고프를 꺾고 우승했고, 2019년에는 호주오픈 16강에 오르며 남녀를 통틀어 2000년대 출생자 중 첫 메이저대회 16강 진출 기록을 세웠다. 그해 프랑스오픈에서는 4강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시모바의 기록은 여기서 끝났다. 프랑스오픈 두 달 뒤 부친이 사망하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후 코로나19 감염, 발가락 골절 등으로 제대로 된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다. 결국 2023년 5월 아니시모바는 번아웃 증세로 투어를 중단하고 재충전하기로 결정했다. 1년여 동안 휴식 후 다시 '천재'의 귀환을 알리는 중이다. 지난해 코트로 돌아와 빠르게 경기력을 끌어올린 뒤 올해 프랑스오픈 16강에 올랐고, 이번 대회에서는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련 극복'이라면 시비옹테크도 지지 않는다. 2023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세계 1위를 달리던 시비옹테크는 작년 11월 금지약물 적발로 '1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으며 무너졌다. 고의성 없이 약을 먹었다고 해명했지만 '약물 선수'라는 비난에 버틸 수 없었다. 작년에 5승을 거뒀지만 올해는 단 1승도 기록하지 못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시비옹테크는 "주위에서 나를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것이 힘들다"고 호소했다. 특히 이번 대회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여섯 번째 메이저대회 트로피와 동시에 잔디코트 징크스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시비옹테크는 2018년 주니어 윔블던에서 우승한 적은 있지만 성인이 된 후 잔디코트 대회에서는 결승에조차 오른 적이 없었다.
두 선수는 딱 한 번 15세 때인 2016년에 맞붙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천재' 아니시모바가 2대0으로 완승한 바 있다. 미국 여자테니스계는 아니시모바의 우승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앞서 열린 두 번의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메디슨 키스), 프랑스오픈(코코 고프) 모두 미국 선수다. 이번에 아니시모바가 생애 첫 우승을 한다면 미국이 여자테니스 메이저대회 3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