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4.03.12 12:25:23
인천공항~뉴욕~보고타 왕복 60시간 보고타는 고도 2600m, 머리 띵 가슴 답답 ‘브롬달 형님’과 경기선 0.972 최악 애버리지 사인요청에 대회장 빠져나오는데 1시간 걸려 개인적으론 16강 진출 톱시드 확보 성과
장도(長途)에 오르다. 딱 맞는 말이었다.
올해 첫 3쿠션월드컵 개최지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는 무지하게 멀었다. 비행기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30시간 넘게 걸렸다.
허정한 김행직 조명우 정예성 등 삼삼오오 2월27일 오전 7시쯤 인천공항에 도착, 9시50분 대한항공(KAL)으로 출발했다. 약 14시간 비행 후 내린 곳은 중간 기착지인 뉴욕 제이에프케네디(JFK) 공항. 콜롬비아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5시간을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야 했다. 대기하는 동안 김행직 선수와 공항 라운지에서 간단하게 식사하고 면세점을 들러봤다. 조명우 정예성 손준혁은 ‘젊은피’답게 맥도날드를 찾아 떠났다.
콜롬비아 국적 아비앙카(Avianca) 항공편으로 6시간을 더 날아서 보고타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 2월27일 아침 8시.(한국시간 2월28일 오전 10시) 보고타공항은 산뜻했고, 아침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공항에서 100달러를 370페소로 환전, 20달러를 주고 유심칩을 샀다. 보고타3쿠션월드컵 조직위원회가 보내준 승합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니 숙소(Hotel black tower premium bocota)가 나왔다. 호텔 도착해서는 짐을 풀고 샤워 후 휴식을 취했다.
숙소는 경기장(centro de alto rendimiento)에서 멀지않았다. 안 막히면 차로 10분 거리인데, 막히면 30분 넘게 걸렸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허정한 김행직 선수와 보고타 시내에 있는 당구클럽을 찾았다. 대회 공식 테이블인 콜롬비아 지마르(JIMAR) 테이블 테스트도 하고 우리나라 클럽과 뭐가 다른지 궁금했다.
당구클럽은 현 콜롬비아 랭킹 1위 다니엘 모랄레스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지마르 테이블 10대가 있었고, 곳곳에 조명우 허정한 등 유명 선수 사진이 붙어있어 친근했다. 클럽 한켠에서는 손님들에게 음료와 맥주를 판매하는거 외에는 우리나라 클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클럽 고객들과 2경기 했는데, 다른 손님들이 테이블 주위에 우루루 몰려 관람하고 박수도 쳐줬다. 처음 경험한 지마르테이블은 낯설었다. 공 구름이 한국 테이블과 다르게 느껴졌지만 테이블천(라사지)은 매끄러운 편이었다.
다음날인 2월29일 김준태 선수와 다른 클럽을 찾았다. 보고타 시내 ‘Billares Club 8’이었다. 테이블은 5층에 12대, 6층에 2대 있었는데 테이블이 허리우드 제품이었다. 한국에선 흔하디흔한 테이블이지만, 멀리 콜롬비아에서 이 테이블을 보다니…. 묘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연습 삼아 2경기 하는 동안 김준태는 손님들에게 예술구를 선보이며 시간을 보냈다.
3월2일 드디어 32강 본선 조별리그가 시작됐다. 나는 토브욘 브롬달, ‘콜롬비아 1번’ 다니엘 모랄레스, ‘베트남 신성’ 타이홍치엠과 C조에 속했다.
모랄레스와의 첫 경기.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보고타는 고도가 2600m다. 우리나라 백두산(2744m)과 맞먹는 높이다. 말로만 듣던 고도문제를 피부로 느꼈다. 경기 도중 머리가 띵하면서 아파오고, 경기에 집중이 안됐다. 계속 끌려가다 34이닝만에 겨우 40:35로 이겼다.
두 번째는 ‘브롬달 형님’과의 경기. 브롬달도 첫판에서 타이홍치엠을 꺾은 터라 승자끼리 대결이었다. 브롬달에게 졌지만 승패를 떠나 경기내용이 최악이었다. 스코어는 36이닝에 35:40. 머리가 띵한게 두 번째 경기라고 나아지지 않았다. 따라서 경기할 때 몸 움직임을 최소화하려 했다. 곁에서 본 ‘브롬달 형님’도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최악의 애버리지가 나왔다. 내가 0.972, 브롬달이 1.111.
조별리그 두 경기를 치르고 1승1패. 나에게는 세 번째 경기(타이홍치엠)가 중요했다. 올해부터 세계캐롬연맹(UMB)은 3쿠션월드컵에 적용하는 ‘UMB 이벤트 랭킹’을 새로 발표했다. 이걸 토대로 시드권(14위 이내)이 정해졌다. 보고타대회 전까지 나는 15위로 13위 허정한과는 6점차, 14위 제레미 뷰리와는 2점차였다. 따라서 반드시 16강에 진출해야 시드권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이홍치엠과의 경기를 높은 애버리지로 이겨, 2승1패를 해야했다.
타이홍치엠과의 경기에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올린 결과 15이닝만에 40:29로 이겼다. 애버리지가 2.666이 나왔다. 조1위로 16강 진출 확정이었다. 뷰리와 허정한이 나란히 1승2패로 16강에 오르지 못하면서 랭킹이 차명종 13위, 허정한 14위, 뷰리 15위가 됐다. 당구선수가 된 이후 처음으로 톱시드 플레이어가 됐다.
32강 조별리그가 끝나고 16강 진출자가 정해지고 나자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기 끝나고 퇴장하려는데 당구팬들이 몰려와 사인과 사진촬영을 요청했다. 무려 1시간 넘게 팬들에게 시달린(?) 끝에 경기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흔히 한국이 세계에서 3쿠션이 가장 인기 있는 나라로 꼽히는데, 솔직히 열기만큼은 콜롬비아에 비할게 못됐다. “우리는 언제나 저런 분위기가 생길려나?” 콜롬비아의 당구에 대한 어마어마한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놀라웠다.
이제 톱시드도 따냈고, 32강 조별리그도 통과하니 덩달아 컨디션이 좋아졌다. 맘 같아서는 16강과 8강을 넘어 4강까지 보였다.
16강전 상대는 ‘치과의사’ 사메 시돔(세계 5위). 야스퍼스나 브롬달처럼 카리스마는 없지만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다. 전날 잠도 푹 자고 몸도 가벼웠다. 그러나 정작 경기는 안풀렸다. 실수도 많았고, 운도 안따라줬다. 결국 44:50(44이닝)으로 지면서 대회를 마감했다.
3쿠션월드컵을 위해 여러 나라를 다니다보면 현지 문화와 음식을 체험할 기회가 많다. 16강전을 마무리하고 현지 문화 체험에 나섰다. 김준태와 함께 콜롬비아 선수들을 따라 고급 레스토랑에서 현지 음식을 맛봤다.
다음날(3일) 보고타를 떠나기 전 김준태의 폭풍 웹서치로 호텔에서 3~4㎞ 거리에 볼만한 곳을 찾았다.
전통 상가 밀집지역인데 그곳에서 콜롬비아 전통 가방 ‘모찔라’ 만드는걸 구경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최고급 커피도 조금 샀다. 그리고 보고타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 JFK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줄잡아 비행기로만 왕복 60시간의 콜롬비아 여정을 마쳤는데,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시차와 고도 때문에 힘들었지만 처음으로 톱 시드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보고타대회 결과 랭킹기준으로 앞으로 열릴 호치민(5월), 튀르키예 앙카라(6월), 포르투(7월) 3쿠션월드컵까지 3개대회 톱시드가 유지된다.
이를 계기로 2년 전 서울3쿠션월드컵 준우승을 넘어 그 이상을 향해 부족한 점을 채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첨언하자면 보고타대회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은 대부분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32강 조별 리그 두 번째 경기를 치르고 나서 나와 조명우, 김행직 등 한국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도대체 감각을 찾을 수가 없다.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결론적으로 5년만에 열린 콜롬비아 보고타대회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 우리들의 실수였다. 성적도 8강 두 명(서창훈 황봉주)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현지에서 파악한 바로는 베트남 선수들은 대회 2주 전 미국 휴스턴 베트남타운에서 연습하며 시차적응을 하고 1주일 전에 콜롬비아에 입국, 고도적응까지 마쳤다고 했다. 트란퀴엣치엔이 우승한 건 실력 외에 철저한 사전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음에는 내가 나서서라도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명종=인천시체육회 소속 당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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