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3.09.29 13:59:42
세계여자3쿠션챔피언! 그 동안 이 자리는 한국 선수에겐 난공불락이었다.
결승에 올라가도 ‘철옹성’ 테레사 클롬펜하우어가 버티고 있었고, 그는 번번이 한국선수들의 꿈을 좌절시켰다.
이미래가 두 번, 한지은이 한 번 정상 일보 직전에서 발길을 돌렸다. 2016년 이미래는 더더욱 아쉬웠다. 30:30 동점 후 승부치기에서 0:2로 졌다.
이신영도 여태까지 3전3패로 한번도 못이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8강전에서 만나 초반부터 달리기 시작했고, 30:14 더블스코어차로 이겼다.
8강전이 사실상 결승전이었다. 결승전 상대인 니시모토 유코도 만만찮은 상대였으나, 12점차(30:18)로 따돌렸다. 한국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여자3쿠션 챔피언이 탄생한 것이다. 딸의 우승에 전북 무주 부모님도 모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단다. ‘무주의 딸이 장한일 했다’며 군수님과 면장님도 축하해줬다.
그는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조금씩 공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고,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과거 한국랭킹 1위 때는 열정으로 공을 쳤다면, 지금은 실력으로 공을 친다. 이제야 자신의 전성기라는 세계챔피언 이신영,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한국여자 선수 최초 세계선수권 우승을 축하한다.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겠다.
=경기 끝나자마자 카톡이 250개 넘게 왔다. 자려고 하는데 밤새도록 휴대폰에서 계속 ‘웅웅’거리더라. 저를 사랑해주고 아끼는 팬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새삼 알게 됐다. 고마울 따름이다. 연맹과 LPBA 선수들도 “축하한다. 대단하다”고 해줬다. 최성원 선수한테는 귀국 후 전화했더니 “살아있네, 잘했어”라며 축하해줬다.
▲가장 어려운 상대인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를 8강에서 만나, 큰 점수차로 이겼다.
=8강전이 사실상 결승전이었다. 테레사한테 이기니 우승이 눈앞에 온 기분이었다. 평생의 꿈이 눈앞에 왔으니, 너무 설렜다. 한편으로는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며 불안했다. 호텔 들어와서 쉬는데 새벽3시에 눈이 떠지며 밤을 꼬박 샜다. 내일(4강~결승전) 실수하면 안되는데, 몸속의 피가 다 마르는 듯 했다. 지금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새벽이었다.
▲그 동안 테레사와의 전적은 어땠나.
=1;1 대결로는 이번에 처음 이겼다. 2013년 세계선수권서 처음 만났고, 파이브앤식스 이벤트대회, 최근 3쿠션서바이벌 예선리그서 만나 세 번 모두 졌다. 네 번만의 첫 승리다.
▲꿈에 그리던 세계챔피언이 됐다. 우승을 확정한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마지막 득점(뒤돌리기)은 빠지기 어려운 빅볼이지만 두께가 중요했다. 그러나 “옛다”하고 쳤다. 마지막 득점에 성공하니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8강전 승리 이후 잠도 제대로 못자고 너무 힘들었다. 그저 이제 끝났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시상대에서의 눈물이 감동적이었다.
=시상대로 걸어 가는데 맨 꼭대기에 태극기가 보이더라. 그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국위선양했구나, 세계챔피언 타이틀 땄구나 스스로 되뇌었다. 애국가가 울리는데 눈물이 주체가 안되더라. 참는게 힘들었다. 그 영상을 지금 봐도 눈물이 난다. 그 동안 한길을 향해 십몇년간 달려왔던게 한 순간에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세계챔피언 딴 것 치고는 세레모니가 간결했다.
=많은 경기서 이겼지만, 많이 지기도 했다. 승자만 기억하는데, 패자도 그 자리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했겠나. 패자 입장을 잘 알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세레모니를 안한다. 경기할 땐 이겨야할 상대지만, 끝나고 나면 같은 선수다. 그래도 이번에는 세계챔피언을 땄으니 태극기 세리모니를 했다.
▲결승전 상대인 니시모토 유코는 상대한 적 있나.
=세계선수권서 두 번 준우승한 대단한 선수다. 애버리지 1점대를 치는 선수다. 그 동안 아시아선수권과 지난해 세계선수권 16강서 두번 졌다. 테레사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세 번만에 처음 이겼다.
▲결승전 초반 일방적으로 앞서가다 중반에 8점차(13:21)로 추격당했다. 언제쯤 우승을 예감했나.
=니시모토가 대단한 선수인줄 알기 때문에 중간에 점수차가 좁혀졌을 때 잘못하면 뒤집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더군다나 4강서 (김)하은이에게 9:21로 지다가 역전한 걸 직접 봤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곧바로 하이런5점을 쳐 26:13을 만들었다. 안정권은 아니지만 거의 80%는 우승에 대한 확신이 들더라. 하지만 끝까지 긴장하며 조금만 더 가면 우승이니, 더 집중하자고 했다.
▲예선부터 결승까지 6경기를 치렀다. 우승까지 최대 고비를 꼽자면.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번 대회에서 모든 경기를 일방적으로 이겼더라. 또 한번도 역전당한 적 없고, 아슬아슬하게 이긴 적이 없엇다. 혼자 마음 조린거 말고는 고비가 없었다. 상대를 가볍게 본게 아니고 타이트한 경기가 없었다. (이신영은 예선부터 결승전까지 차례로 25:11, 25:14, 30:13, 30:14, 30:15, 30:18로 승리했다. 6경기 모두 10점차 이상 완승이었다. 6경기 평균 애버리지는 0.894)
▲어떤 큐를 사용하나.
=후원사인 티피오케(TPOK)의 ‘루츠케이’큐를 쓰는데, 나한테 딱 맞는다.
▲평소 인복(人福)이 많다고 했는데, 고마운 분들도 많겠다.
=고마운분들이 많다. 허리우드 홍용선 전 회장님은 가장 오래 후원해주셨고, 후원 끝나고 나서도 계속 관심 가져주셨다. 전부터 제가 세계선수권 우승하면 감사인사 드린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게 됐다. 충남당구연맹으로 가고나서 우승도 많이하고 좋은 일이 많았다. 충남당구연맹 김영택 회장님과 부산당구연맹 서육규 전 부회장님, 좋은 큐를 주신 티피오케 전남수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항상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와주시는 또다른 부모님인 어성초 사장님은 평생 고마운 분이다. 또한 이신영캐롬캐슬을 찾아주시는 회원 여러분 모두 감사하다.
▲선수들도 많이 도와줬다고.
=그렇다. 선수들에게 공에 관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최성원 강자인 선수에게는 부산교류전에서 조언을 많이 받았다. 허정한 선수는 이신영캐롬캐슬에 두어번 와서 공을 가르쳐줬다. 제 당구장 근처에 사는 박인수 선수는 네 번이나 찾아와 원포인트 레슨을 해줬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레슨이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부모님께서도 대견해 하시겠다.
=그 동안 부모님은 저 때문에 속상해 하셨다. 당구선수 한다는데 TV도 안나오니 “지금도 당구선수 하느냐”라는 얘기를 듣곤하셨단다. 근데 이번에 세계선수권 우승하니 단번에 기가 살아나신거 같더라. 하하. (전북 무주군 적상면) 동네 사람들 축하전화가 끊이지 않고 잔치하라고 난리라면서. 동네에 플래카드가 10개 넘게 붙었다고 하시더라. 군수님과 면장님도 축하해주셨다고, 10월 군 행사때 초청해서 축하자리 마련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주의 딸이 장한일 했다고. 아버님이 10월 행사때 꼭 내려오라고 하셨다.
▲세계챔피언 되고 나서 당구장에도 특수 있는거 아닌가.
=16일 귀국했는데 이신영캐롬캐슬 회원들이 건물 내외부에 플래카드 걸었더라. 결승전 끝나고 밤에 울면서 당구장으로 전화한 분도 계셨다고 들었다. 새로 오신 손님들도 많은데 같이 사진 찍고 사인도 해드린다.
▲올해 고성군수배(7월)-서울3쿠션서바이벌에 이어 세계선수권까지 3개대회를 석권하며 페이스가 좋다.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하는지.
=세계선수권 나가기 전부터 공에 자신감이 붙었다. 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예전에 못했던 부분들이 가능해졌다. 그 동안 꾸준히 준비해왔다. 후배에게 모범이 되고 싶어서 당구시작하고 하루도 큐를 내려놓은적 없다. 여러 선수들에게서 공을 배웠지만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제 조금씩 깨닫고 있다. 과거 국내1위를 오래 하면서 슬럼프에 빠진 적 있다. 그때는 열정으로 당구를 쳤다. 지금은 실력으로 치고 자신있다. 저의 전성기는 이제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있는 샷과 어려운 샷을 꼽자면.
=최근 들어 두께에 자신이 붙었다. 얇게 치고, 두껍게 치고 등 두께를 이용한 공에서 미스가 많이 줄었다. 반대로 큐스피드가 어렵다. 여자 선수에겐 평생의 숙제가 아닌가 싶다.
▲세계챔피언이 됐다. 다음 목표는.
=우승하고 나니 힘든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무 생각없이 한달만 푹 쉬는게 소원인데, 구장운영 때문에 그럴 상황도 아니고. 세계챔피언 타이틀 따니까 무게가 느껴지더라. 생활패턴과 당구에서 허투루 행동해선 안되고 더 체계적이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 애버리지도 더 높이고. [황국성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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