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19 11:09:58
[도서]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70년 이상 미국의 고강도 경제제재를 받는 나라, 내일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
밖에서 보는 북한은 매일매일 위기가 일상인 곳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제재와 고립 속에서 70년 넘는 시간을 보냈고, 만성적인 식량부족으로 인해 아직도 굶어 죽는 이들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경제를 전공한 박사 7명은 신간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을 통해 북한을 여전히 생존하게 만드는 내부 경제 변화상을 여러 각도에서 설명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하루하루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고 강조한다. 1990년대 중반 펼쳐진 ‘고난의 행군’ 속에서 등장한 ‘시장’이 돌이킬 수 없는 생존 공간으로 북한 사회에 잡은 가운데, 나름의 생존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선노동당과 더불어 ‘장마당’이 북한을 떠받치는 두 개의 당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기업은 북한식 시장경제에서 이익을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비공식 인력시장은 일상의 한 장면이 됐다”며 북한 내부에서 이미 자본주의식 기업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무자비한 정치체제’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북한경제의 다양한 변화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이들은 남북관계가 파국을 맞은 상황이 역설적으로 북한을 더 잘 이해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 또한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냈다.
이 책은 8개의 주제를 통해 북한경제를 읽어내고 있다. 저자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와 재래식 무력 개발에 국가재정을 우선적으로 투자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력·경제개발 병진노선을을 추진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전에 없었던 자신만의 ‘개발 있는 독재’를 시작했고, 전 국가적인 산업·주택 개발 등 발전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자들은 북한경제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기업’의 활동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계획경제체제에서 당의 통제하에 있던 기업들이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통해 경영권을 학대하고 △자금·원자재 조달 △기술 개발 △마케팅 등에 신경쓰며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앙공급체계가 무너진 다음부터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 생존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400여 개 시장의 오늘 역시 이 책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저자들은 “2000년대까지 북한 시장을 중국 제품이 장악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북한 상품이 함께 경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대도시를 중심으로 리모델링된 백화점들이 상류층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묘사된 북한 부유층의 삶이 그저 드라마 속 모습만이 아님을 설명한다.
북한의 ‘숨은 시장’ 격인 노동시장도 북한경제의 속살을 분석할 수 있는 ‘프리즘’ 역할을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저자들은 북한 자본가들은 여전히 당국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불법 영역인 노동시장의 변화·발전상에도 돋보기를 갖다 댄다. 공산주의가 금기시하는 ‘노동의 상품화’가 시장화의 진전 속에서 북한 주민들의 필수적인 생계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이 책에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에 상업은행들이 생겨나며 시장화·기업화 속에서 나름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도 포함됐다.
저자들은 남북관계 단절과 ‘적대적 두 국가’ 시대일수록 북한을, 북한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라며 독자들이 북맹(北盲)에서 벗어날 것을 재차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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