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8.15 18:30:42
[이대열 존스홉킨스대 신경과학과 교수 인터뷰] “AI 열풍 지나고 나면 뇌내현실 뜰 것” 장애의 근본적인 해결, 인간 초월 등 우리 일상의 많은 걸 바꿀 기술 사회적 논란 대비한 인문학자 역할 중요
‘뇌내현실’이라는 개념을 가장 처음 떠올리고 제안한 것은 이대열 존스홉킨스대 신경과학과 교수다. 이 교수는 신경과학과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학자이자, 2021년 삼성호암상 의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구자다. 동료 과학자들을 그를 ‘천재’라고 부른다.
‘한국을 바꿀 10가지 질문’ 프로젝트에 참여해 뇌과학 분야에서 가장 도전적인 질문을 고민하던 그는 뇌와 직접 데이터를 주고받는 뇌내현실 기술을 떠올렸다.
이 교수는 “요즘에야 인공지능(AI)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이야기”라며 “AI 열풍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뇌내현실의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뇌내현실 기술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뇌에 감각 신호를 전달할 수 있고, 거꾸로 운동 신호를 근육 기관에 보낼 수도 있다. 지식 데이터를 통째로 뇌에 업로드할 수 있고, 심지어는 고통이나 쾌감 같은 감정을 조절할 수도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뇌가 조절하므로 다른 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뇌와 소통한다면 이 모든 게 가능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헬리콥터 조작법을 3초 만에 배우는 것처럼, 책을 읽지 않고도 방대한 지식을 순식간에 학습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물론 아직은 먼 이야기이지만, 이 교수는 미리 상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언제쯤 실현될까? 이 교수는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원리를 발견했을 때, 그걸로 폭탄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상상 못했을 것”이라며 “뇌내현실도 얼마나 필요를 느끼고 자원을 투입하는지에 따라 실현의 속도는 달라진다”고 했다.
현실의 개념을 바꾼다는 철학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뇌내현실 기술은 많은 걸 이뤄낼 수 있다. 이 교수는 “뇌내현실은 장애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지 마비 환자의 경우, 뇌를 바로 로봇 팔다리에 연결해서 조작할 수 있을 것이다.
뇌가 각종 신호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분야에서는 이미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로봇이나 컴퓨터를 조작하는 실험이 수차례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말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상상하는 문장의 74%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셀’에 지난 14일 공개하기도 했다.
장애가 없더라도 뇌내현실 기술을 사용한다면, 기존의 인간 역량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다. 이 교수는 “AI와 사람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함께 발전하게 될 것”이라며 “뇌내현실 기술로 인해 초(超)인간의 시대가 올 수 있다”고 했다. 1km 밖에 있는 글자를 읽고, 100m를 5초 안에 뛰고, 백과사전을 10초 안에 다 외우는 인간이 뇌내현실 기술로 가능할지 모른다.
또한 이 교수는 “인간의 모든 가치판단, 심미적 경험, 고통이나 쾌락 같은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우울할 때마다 버튼 하나로 다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 인간에게 우울감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부정적 경험과 감정은 사라진채 긍정적인 것들만 남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 교수가 뇌내현실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이 교수는 특히 인문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뇌내현실이 많은 걸 바꾸고 사회적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면서도 “뇌내현실 기술은 언젠가는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기술 모라토리엄(기술 개발을 중단하자는 합의)은 의미 없고 불가능하다”며 “그렇다면 윤리를 담당하는 인문학자, 연구자들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연구개발(R&D) 정책에도 조언을 남겼다. 이 교수는 “최근 AI를 향한 단시안적 투자가 우려된다”며 “기술의 사회적 담론을 잘 다루려면 여러 학문 분야에 균형있게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AI의 답이 AI학자들에서 나온다는 보장이 없고, 어디에서 해답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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