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복귀는 공교롭게도 네이버의 최대 경쟁자인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창업자 행보와 겹친다. 브린은 챗GPT가 등장해 구글에 위기감이 커지자, 2023년 회사에 복귀해 직접 인공지능(AI) 개발에 참여하는 등 창업자로서 조직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구글이 단시간에 AI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한때 한국 기업 중 시가총액 3위에 오르기도 했던 네이버는 현재 시총 12위에 그친다. 주가는 약 3년간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I 등장으로 검색엔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네이버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에 이 의장은 2017년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난 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역할을 맡다가 올해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했다. 빅테크의 AI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네이버를 AI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이 의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행보다.
이 의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네이버의 첫 해외 투자법인 '네이버 벤처스' 설립을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연 현지 벤처투자자들과의 네트워킹 행사에서 "인터넷에서 검색이 그랬던 것처럼 AI 모델은 보편화되고 데이터가 차별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의장은 "처음에는 검색이 다 알고리즘 싸움이었지만 결국 알고리즘은 거의 다 비슷해지기 시작했다"면서 "네이버가 데이터로 차별화했던 것처럼 AI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네이버는 데이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 외부에서는 포시마크 투자 같은 것을 보고 '왜 중고시장에 네이버가 난데없이 투자했느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저희는 이 회사의 상거래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고, 스페인에 있는 월라팝도 그래서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장은 네이버가 구글에 맞서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이 의장은 "처음에는 구글 검색이 한글을 잘 처리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전 세계 모든 언어를 다 잘 다루기 시작했다"며 "그때 큰 위기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 의장은 "네이버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구글에서 안 나오는 데이터가 구글과 차별화한 큰 힘이었다"고 회고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이번 네이버 벤처스 행사에서는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네이버 벤처스 설립 배경 등을 발표했고, 김남선 전략투자부문 대표가 네이버 벤처스의 첫 투자 회사인 트웰브랩스의 이재성 대표와 좌담회를 진행했다. 김 대표가 이끄는 네이버 벤처스는 이달 설립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실리콘밸리 이덕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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