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20 17:36:50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설문조사 소아진료 네트워크 시범사업 효과 “전국에 상시 사업으로 확대해야”
생후 5개월 아이가 숨을 쌕쌕거리며 병원을 찾았다. RS바이러스 폐렴이었고, 산소포화도는 90% 이하로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미숙아로 태어났던 아이는 기관지폐이형성증을 앓고 있었다. 인공호흡기가 필요했지만 병원에는 인공호흡기가 없어서 상급종합병원에 전원을 의뢰했다. 빅5 병원에 모두 전화했으나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부모는 의료진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고, 조부모는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의료진들이 외래 진료를 멈추고 전화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동안, 진료가 밀린 다른 환자들도 불만을 쏟아냈다. 한 시간 넘게 전화를 돌린 끝에 겨우 환자를 받아주겠다는 상급종합병원을 찾았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의사는 “환자가 많을 때는 매일 한두번씩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아픈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청소년병원협회가 소아청소년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2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상급의료기관 전원이 어렵다는 응답이 61%를 차지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상급병원에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중증의 소아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어진 영향이다.
대한청소년병원협회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소아청소년병원의 소아환자 상급의료기관 전원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18%가 “소아환자가 거의 수용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43%가 “간헐적으로 수용된다”고 답했다. 사실상 전원이 어렵다는 응답이 61%나 된다.
최용재 대한청소년병원협회 회장은 “위중증일수록 전원이 필요한데, 현실은 위중증일수록 전원이 어렵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도 소아청소년과 인력이나 병상이 부족해 받아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이홍준 대한소아청소년협회 부회장은 “상급병원 전문의도 365일 당직을 설 수는 없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누구의 잘못이 아닌 제도의 실패”라고 말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부터 소아진료 지역협력체계 네트워크 시범사업을 시행중이다. 지역별로 20곳의 협력체계를 구축해, 1차 병원과 중심기관, 상급종합병원, 약국을 모두 연계하는 사업이다. 이들은 업무협약을 맺어 환자 상태를 긴밀하게 소통하고 전원을 결정한다. 참여기관에는 별도의 수가와 지원금이 주어진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소아청소년병원들은 상급종합병원 전원에 어려움을 덜 겪었다. 응답자의 90%가 항상 혹은 대체로 수용된다고 답변했다.
이에 현 시범사업을 개편해 국가가 책임지는 보편적 소아진료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 회장은 “시범사업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만큼, 전국적‧상시적으로 제도화하고, 예산을 정례화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은 이미 끊긴 지 오래”라며 대선 후보들을 향해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해 진료를 지속할 수 있는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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