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는 약 37조개의 세포가 존재한다. 이 중 일부는 세포분열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비정상 세포로 변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면역시스템이나 세포자살 기전(아포토시스)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거되지만, 면역기능이 약화하거나 노화가 진행되면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
특히 암의 '뿌리'로 불리는 암 줄기세포는 암의 발생은 물론, 전이와 재발에도 깊이 관여한다. 이들을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일은 현재의 항암치료에서도 여전히 큰 과제다. 이런 배경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자연 유래 항암물질이다.
그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성분이 바로 EGCG(Epigallocatechin gallate)다. EGCG는 녹차에 풍부하게 함유된 카테킨 계열 항산화 성분으로, 전체 카테킨 중 약 50~80%를 차지한다. 식물성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카테킨은 항산화 작용을 통해 세포 손상을 줄이고, 노화와 만성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EGCG는 핼리팩스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진행된 항암치료 연구 콘퍼런스로 한국을 포함한 31개국에서 350명 이상의 연구자와 의사들이 참여했다. 핵심 목표는 부작용이 적은 천연 항암 식물영양소와 기존 약물의 재활용(드러그 리포지셔닝)을 통해 단일 표적 항암제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에서 EGCG는 커큐민, 제니스테인, 레스베라톨과 함께 '4대 항암 식물영양소'로 선정됐다. EGCG는 암 줄기세포를 직접 표적화할 수 있으며, 기존 항암치료가 병행할 경우 부작용은 줄이고 치료 효과는 높일 가능성을 보여줬다.
EGCG의 항암 작용은 △암세포 사멸 유도 △세포 주기 정지 △신생혈관 형성 억제 △종양 관련 염증 억제 △DNA 손상 방지 등 다섯 가지 기전으로 요약된다. 항산화력 또한 매우 강력해 일부 연구에선 비타민C보다 100배 이상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국내외 연구도 활발하다. 2023년 'Nature Cancer'에 실린 논문을 보면 EGCG가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 대사 경로를 차단해 증식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해 한국연구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3잔의 녹차를 마신 사람은 유방암 발생률이 21% 낮아졌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 밖에 대장암, 전립선암에도 EGCG의 의미 있는 억제 효과가 동물실험과 세포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EGCG는 항암 작용 외에도 건강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강력한 항산화 및 항염 작용으로 △피부노화 지연 △심혈관 건강 증진 △체지방 감소 △대사질환 예방 △뇌신경 보호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에는 △자외선으로부터 피부 보호 △구강 내 유해균 억제 △호르몬 균형을 통한 탈모 예방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다만 아직 많은 연구가 세포 및 동물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어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 검증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EGCG의 생체 이용률(흡수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과 제품 개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EGCG에 해조류 유래 저분자 알긴산을 결합해 흡수율을 높인 셀메드의 '갈로플렉스' 같은 복합체 제품이 있다.
오랜 세월 건강 음료로 사랑받아온 녹차. 그 속에 숨겨진 EGCG는 단순한 전통을 넘어 미래 항암 전략의 중요한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자연이 준 이 선물이 앞으로 의료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될지, 과학의 발전이 그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