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가짜뉴스를 반복 보도하는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악의적 보도에 한정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권력에 의해 악용 가능성은 작지 않다. 언론사가 감당하기 힘든 거액의 배상 청구는 권력 비판을 위축시킬 것이다.
민주당은 "미국이 이미 도입한 제도"라며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미국의 사례는 오히려 경고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에 천문학적 손해배상 소송을 잇달아 제기했다. 지난해 CBS에 200억달러(약 28조원), 올해 월스트리트저널에 100억달러(약 14조원)를 청구했다. CBS는 각종 인허가권을 쥔 연방정부의 압박을 우려해 1600만달러(약 224억원)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런 전례가 쌓이면, 언론은 비판 보도 전에 '혹시 소송을 당하지 않을까' 하며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한국은 허위 보도에 민사상 손해배상뿐 아니라 미국·영국·프랑스에는 없는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나라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더해지면 언론 자유가 위축될 위험이 크다. 민주당은 법원이 손해배상 대상을 악의적 보도로 한정할 것이라 하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 미국도 공적 인물에 대한 보도가 명예훼손이 되려면 '실질적 악의'를 원고가 입증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이 있으나, 트럼프의 소송 남발을 막지 못했다. 한국 언론의 규모는 미국보다 훨씬 영세해 거액 배상은 더 큰 압박이 된다.
'악의성' 판단이 정치적 잣대에 휘둘릴 위험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자기편에 불리한 보도만 골라서 악의적이라 몰고, 법원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법부마저 공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법부 독립까지도 흔들리게 된다.
물론 언론의 허위 보도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이 그 해법인지는 의문이다. 신속하고 투명한 정정 보도 절차와 자율 규제 강화 같은 균형 있는 대책이 우선이다. 언론 개혁의 이름으로 언론 자유를 옥죄는 순간, 민주주의는 그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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