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국 공동선언문 채택 '보호주의' 두고 미중 입장차 종료 30분전까지도 무산 위기 의장국 韓, 조율로 극적 합의 韓美 2차 고위급 관세협상은 뚜렷한 결과물 못내고 마무리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 셋째)이 16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2025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오쿠시 마사키 일본 경제산업성 부대신, 미야지 다쿠마 일본 외무성 부대신과 면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빈손으로 끝날 위기였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가 막판 합의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며 막을 내렸다. 2005년 이후 20년 만에 APEC 의장국을 맡은 한국이 미·중 간 첨예한 입장 차를 최종 조율하며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다. 다만 APEC과 동시에 진행됐던 한미 관세 협상에선 별다른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16일 APEC 회원국들이 공동 채택한 공동선언문에는 △다자무역 체제를 통한 연결 △무역 원활화를 위한 인공지능(AI) 혁신 △지속가능한 무역을 위한 공급망 구축 협력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공동선언은 회원국들의 컨센서스를 담아 발표하는 협의 성과물이다. 회원국 간 이견이 일치되지 않으면 공동성명 대신 의장성명으로 이를 갈음한다.
앞서 지난 8일부터 시작된 실무 협상에서 각 회원국은 첨예한 입장 차를 드러냈다. 특히 중국은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과 함께 보호주의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공동성명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공격에 대한 APEC 회원국들의 불편한 입장을 공동으로 드러내자는 포석이다. 일부 국가는 APEC 논의 과정에서 미국의 관세 대책에 APEC 회원국들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내놨다.
하지만 미국 측이 반대했다. 회의 종료 30분 전까지만해도 미·중 간 의견 차이로 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될 가능성이 컸지만, '보호주의 반대' 등의 내용을 빼면서 막판 타협을 이뤄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공동선언문 합의를 이끌어낸 건 최근 글로벌 통상 환경이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APEC 회원국들이 협력해 이를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신호를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공동성명은 다자무역체제를 통한 연결과 세계무역기구(WTO)의 개혁 방향에 방점을 뒀다. APEC 회원국들은 무역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무역 시스템의 법적 토대를 제공해온 WTO가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아울러 WTO 기능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으며 내년 3월 예정된 제14차 WTO 각료회의(MC-14)까지 관련 논의를 지속할 방침이다.
한국은 'AI 통상 이니셔티브'를 제안해 회원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관세·통관 행정에서의 AI 도입 확대, 상이한 각국 AI 제도에 대한 민간의 이해도 제고, AI 표준·기술에 대한 자발적인 정보 교환 등 이니셔티브의 3대 추진 과제를 제안해 합의를 이뤘다.
지속가능한 무역을 통해 번영을 이루기 위한 공급망의 중요성에도 공감했다. 한국은 민관 합동 대화인 '지속가능한 공급망 포럼' 개최와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해 회원국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울러 회원국들은 비즈니스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무비자·패스트트랙 입국이 가능한 'APEC 가상 기업인 여행카드' 도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앞서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 처음 진행된 한미 관세 협상은 그동안의 실무 협의 상황을 점검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통상 전문가들은 리더십 부재로 민감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오는 6월 대선 이후 협상에 속도가 날 것으로 관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