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17 09:00:00
아파트 미분양 사태 언제까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일대가 이른바 ‘반세권(반도체 산업단지 인접 지역)’ 효과로 드러난 양면적인 모습이 부동산 시장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삼성전자가 총 36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예정)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읍 일대에 조성될 예정이다.
지난 4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시공책임형 건설사업관리(CMR) 방식으로 추진되는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공사 1공구에 대한 시공사 선정 공고를 발표했다. 공사비만 1조3836억원이 투입될 만큼 대규모 공사다. LH는 입찰 참가 신청서를 접수한 뒤 평가를 거쳐 오는 8월 최종 시공사를 확정할 방침이다. 착공은 2026년, 완공 목표는 2031년이다. 산업단지 조성이 마무리되면 삼성전자는 이곳에 36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팹 6기를 순차적으로 건설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 첫 번째 생산라인 착공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D램 생산기지로 키울 계획이다. 이 팹은 올해 국내에서 신규 착공되는 유일한 반도체 공장이다. SK하이닉스는 1기 완공 이후 나머지 3개 팹도 순차적으로 건설할 방침이다.
반도체 효과로 용인시 처인구 일대 땅값은 그야말로 고공행진 중이다. 2023년 이후 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많이 오른 지역으로 용인시 처인구가 꼽힐 만큼 토지 가격은 급속도로 오르고 있다.
반면 ‘반세권’ 효과를 앞세워 반도체 산업단지 인근에 분양한 아파트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세권’이란 말 그대로 반도체 특화 도시의 줄임말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대규모 공장을 짓는 지역과 인접한 주거지역을 뜻한다.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 들어선다는 점을 앞세워 처인구 일대에는 이렇다 할 기반시설이 없음에도 상당히 많은 물량의 아파트가 공급됐거나 앞으로 공급 예정이다. 다만 지난해부터 분양한 단지들은 대부분 청약 경쟁률이 1대1 미만으로 미분양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로 주목받았던 용인 부동산
높은 분양가에 미분양 쌓인다는데
경기도 용인시청에서 차를 끌고 나와 용인대입구 삼거리에서 평택 방향으로 약 20분 달리면 왼쪽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e편한세상용인한숲시티(이하 한숲시티)다. 총 5개 단지(2~6단지), 6725가구로 구성된 이곳은 한때 경기도에서 가장 유명한 단지 중 하나였다. 바로 대규모 미분양 사태 때문이다. 한숲시티는 약 10년 전 분양 당시 인프라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으며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 이동이 쉽지 않았다. 왼쪽 동탄2신도시와 직선거리는 약 4~5㎞ 떨어져 있지만 차로 이동하려면 20~30분 소요될 만큼 고립된 곳이다. 전용 84㎡ 분양 가격은 약 2억원대 후반이었지만 분양 당시 절반 이상 주인을 찾지 못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조금 바뀌고 있다. 입지 자체는 여전히 고립됐지만 주민들이 입주하고 인근 상가도 조금씩 입점하면서 생활환경이 좋아졌다. 워낙 대규모로 조성됐다는 점에서 입주 7년이 지난 지금은 단지 자체만으로 어느 정도 생활권이 유지되고 있다.
단지 안에는 처인성유치원을 시작으로 남곡초, 한숲중, 처인초·중·고 등이 위치했다. 단지 주변으로 각종 상가나 공원 등이 잘 갖춰져 있다.
물론 외부로 이동하려면 여전히 불편한 상황. 당장 지하철이 없고 버스를 이용하려면 서울이나 주요 지역까지 환승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통해 강남역에서 한숲시티까지 이동하려면 신갈오거리에서 직행버스를 한 차례 환승하면 1시간 30분 만에 이동 가능하다. 경강선 연장(계획), 45번 국도 8차선 확장(예정), 수도권 내륙선 동탄·청주공항 광역철도(계획), 반도체고속도로(계획) 등은 그나마 기대할 만한 요소다.
e편한세상용인한숲시티6단지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처인고를 둘러싸고 한 부지가 눈에 들어온다. 현재 한창 분양 중인 힐스테이트용인마크밸리(이하 용인마크밸리)다. 역시 수도권 분양 시장에서 미분양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단지 중 하나다. 지난 4월 분양한 이 단지는 대부분 면적대에서 미달을 기록하며 평균 경쟁률 0.46 대 1(599가구 중 278건 접수)을 기록했다.
용인마크밸리가 미분양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결정적으로 입지 대비 다소 높은 분양가가 원인으로 꼽힌다.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최고 5억7960만~5억9310만원에 분양 가격이 책정됐다.
인접한 한숲시티6단지 전용 84㎡가 올해 5월 4억3000만원에 거래됐으며 최근 4억원 초중반대 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30% 이상 높은 가격이다. 두 단지 준공 연도가 10년 가까이 차이 난다고 해도 입지나 단지 규모 등을 고려해도 다소 비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용인마크밸리뿐 아니다. ‘반도체’를 앞세운 다른 인근 단지도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용인시 처인구 남동에 위치한 ‘용인푸르지오원클러스터’ 2단지는 지난 4월 청약을 진행한 전국 30개 단지 중 미달 가구 수 기준으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총 1630가구 모집에 634건 접수, 평균 경쟁률 0.38 대 1을 기록했다. 주인을 찾지 못한 집만 1000가구에 이른다. 앞서 지난해 8월 분양했던 1단지의 경우 1순위 1259가구 모집에 1171명이 신청해 평균 0.93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용인푸르지오원클러스터나 용인마크밸리 등은 지난해 8월 ‘용인둔전역에피트’ 이후 처인구 일대 8개월 만에 공급된 새 아파트다. 용인둔전역에피트는 1009가구 모집에 1637건 청약으로 평균 경쟁률 1.62 대 1을 기록했다. 당시 감지됐던 시장 침체 분위기가 이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통계 자료를 보더라도 집값 하락은 뚜렷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1주(5월 5일 기준) 용인시 처인구 아파트 상승률은 전주 대비 0.06% 하락했다. 올해 누적 상승률은 0.57%로 용인시 전체 평균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모습이다.
공급 과잉도 처인구 아파트 시장 침체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해 용인시 처인구 적정 입주 물량은 1398가구였으나 실제 입주 물량은 9309가구에 달했다.
토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많이 올라
반면 토지 시장은 아파트와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처인구 땅값은 그야말로 고공행진 중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5년 1분기 지가변동률·토지거래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용인시 처인구 토지 가격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 1.26% 올랐다. 같은 기간 용인시 처인구보다 땅값이 많이 오른 지역은 전국적으로 서울시 강남구(1.3%) 한 곳뿐이다.
한쪽에서는 아파트 미분양이 계속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땅값이 끊임없이 오르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전문가들은 토지의 경우 공급이 제한적이고 활용 가치가 다양한 반면, 주택의 경우 당장 실거주를 생각하기엔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수요 대비 공급 과잉 등 영향 때문으로 분석한다.
향후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지금 당장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반도체 산업단지 주변에는 이렇다 할 주거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반경 10㎞ 내에는 1000가구 이상 대규모 아파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직선거리로 약 10~12㎞ 떨어진 용인마크밸리와 한숲시티, 용인푸르지오원클러스터가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지역과 가장 가까운 주거지역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분양 초기 고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정도 수요를 확보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삼면이나 남사읍 일대는 대부분 산이나 구릉지로 형성돼 있어 주거시설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다. 지금 당장 미분양으로 고전하는 단지도 시간이 지나면 미분양을 조금씩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승태 감정평가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0호 (2025.05.21~2025.05.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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