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16 13:04:02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이하 버크셔)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95)가 60년 투자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는 제60회 연례 주주총회에서 주주 4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나이 95세. 지난 2021년 그레그 에이블 버크셔 비보험 부문 부회장(63)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지만, 그의 은퇴를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버핏 회장 스스로 은퇴 계획이 없다고 말해온 데다 투자자가 버핏 없는 버크셔를 상상하기란 힘들었다.
이 때문에 주총 말미 버핏 회장이 은퇴를 선언할 때 주총장은 일순간 술렁였다. 그는 “버크셔 전망이 그레그 에이블의 경영 아래 더 좋을 것”이라며 “내가 모든 (버크셔) 주식을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4만명 참석자는 이내 박수로 60년 투자 현역의 은퇴를 축하했다.
경이로운 버크셔 주가
60년간 550만% 올라
버핏 회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건강’을 은퇴 이유로 들었다. 그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그가 은퇴를 선언하자 미국에서 그의 삶을 찬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는 “버핏 회장은 미국 자본주의의 모든 긍정적인 면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소셜미디어에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버핏 회장의 지혜에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브라이언 모이니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CEO도 인생과 사업에 대한 여러 가르침에 감사를 표했다. 기술·금융 부문 정상에 오른 인사들 또한 버핏 회장의 발자취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WSJ도 “워런 버핏 같은 인물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버핏 회장만큼 전 세계 투자 업계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가 없다. 그는 1964년 몰락하는 직물 회사 버크셔를 사들여 전 세계 최고 투자사로 키웠다. 버크셔는 60년 만에 연간 매출 4000억달러(약 561조원)를 올리는 자회사 180개의 지주사가 됐다.
철도, 에너지, 화학 등 다양한 분야가 망라된 자회사 명단에는 미국 대형 보험사 가이코를 비롯, 건전지 제조 업체 듀라셀과 패스트푸드 체인 데어리퀸 등 유명 업체가 즐비하다. 버크셔 주가는 1964년부터 2024년까지 60년간 550만%나 상승했다. 연평균 수익률이 20%나 된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배당을 포함한 총수익률은 3만9054%였다. 이 역시 놀라운 성장세지만 버크셔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버크셔 시가총액은 1조2000억달러(약 1683조원)로 전 세계 상장 기업 중 8위다. 비(非)테크 기업 중 시총 1조달러를 넘은 곳은 버크셔가 유일하다.
첫 주식 투자는 11세
소박한 삶의 방식 추구…기부 앞장
1930년생인 버핏 회장의 생애 첫 주식 투자는 11세 때였다.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2년 3월, 정유회사 시티스서비스의 주식이 반 토막이 나자 아버지에게 부탁해 3주를 매입했다. 주당 38.25달러에 산 주식이 4개월 뒤 40달러로 오르자 이를 매각해 5.25달러 수익을 기록했다. 버핏 회장은 연방하원에서 4선 의원을 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투자 과정에서 부모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는 7세 때 공립도서관에서 빌린 ‘1000달러를 모으는 1000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읽은 뒤 동네에서 코카콜라와 껌, 잡지를 방문판매하며 돈을 모았다.
그는 또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잡화점에서 일을 했고, 신문을 배달했다. 14세 때 첫 부동산 투자를 했을 때 사용한 1200달러도 이렇게 스스로 모은 자금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버지 반대로 펜실베이니아대에 입학했고, 고향인 네브래스카대로 옮겨 경영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50년대에는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재학 당시 은사이자,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독립했다.
그는 기업 내재 가치에 기반해 주식을 선택하고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전략으로 자산을 불려나갔다. 40대 초반에 백만장자가 된 뒤 버크셔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기업 내재가치를 계산하면 주당 19달러가 돼야 하는데, 주가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버크셔를 인수했고, 에너지와 은행, 항공, 식품 등 실물 경제와 관련한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1682억달러(약 235조원)의 자산을 지닌 버핏 회장은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브스가 집계하는 갑부 순위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다른 갑부들과 달리 소박함을 추구하는 삶으로 유명하다. 고가의 미술품을 수집하거나 화려한 저택을 소유하지 않았다. 1958년 3만1500달러에 구입한 오마하의 조용한 주택에서 여전히 거주한다. 식습관도 평범한 중산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 3회 이상 맥도날드 치킨너겟을 먹고, 감자칩을 간식으로 즐긴다. 하루 평균 5캔의 코카콜라를 마신다. 버핏 회장은 지난 2013년 CBS 인터뷰에서 “화려한 옷도, 비싼 음식도 필요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억만장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자신의 재산 99%를 자선 사업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그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함께 다른 억만장자들을 상대로 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가치·장기투자 고수
“이해할 수 있는 사업 투자”
버핏 회장은 가치 있는 기업을 오래 보유하는 전략을 60년간 고수해왔다. 애플, 코카콜라, 뱅크오브아메리카,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셰브론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종목은 버크셔 포트폴리오(2630억달러) 중 70%를 차지한다. 버크셔는 현재 3477억달러(약 487조6000억원)의 현금을 보유했다.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보유한 기금 총액보다 크다. 또한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단기 국채 5%를 갖고 있다. 이처럼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는 미국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하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다이먼 CEO는 “버핏은 정직과 낙관, 상식으로 미국과 미국 기업 성장에 투자한 인물”이라며 “버핏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그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버핏 회장은 명시적으로 투자 전략을 밝힌 바 없다. 다만 주주총회 보고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의 투자 방식을 규정하는 제1키워드는 가치투자(Value Investing)다. 쉽게 비유하자면 1달러짜리를 50센트에 사는 식이다. 이처럼 내재 가치보다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 기본 투자 전략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싸다고만 투자하지는 않는다. 그는 수많은 기업을 M&A하며 “우량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산다”는 원칙을 앞세웠다. “좋은 기업을 싸게 사는 것보다, 위대한 기업을 적정 가격에 사라”는 말에 그의 철학이 담겼다. 또한 장기적으로 수익을 내는 ‘경제적 해자(Moat): 다른 주식보다 항상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한’ 기업에 투자한다. 버핏 회장은 또한 자신이 사업 구조를 이해할 수 있을 때만 그 기업 주식을 담는다. 애플 주식을 다량 보유한 정도만 제외한다면 투자 기업 대다수가 ‘구(舊)경제’를 대표하는 업종이라는 점도 이를 말해준다.
장기투자도 버핏 회장을 상징한다. 예컨대 코카콜라는 버크셔가 1988년 처음 매수한 이후 40년 가까이 들고 있는 종목이다. 그는 “10년 동안 보유하지 못할 주식이라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 “주식 시장은 조급한 사람의 돈을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 옮겨주는 장치” “주식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인기 투표장, 장기적으로는 저울”이라는 말로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거래 수수료와 세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매수 후 보유’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장을 예측하지도 않는다. 시장을 좌우하는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예측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다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비즈니스에 투자할 뿐이다. 최근 관세 전쟁에 따른 주식 시장 급변동성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이 같은 생각이 나타난다. 버핏 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최근 30일 혹은 45일, 100일 동안 일어난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다”며 “1929년 대공황과 비교해 최근 변동성은 큰 움직임이 아니다. 극적인 약세장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남들이 공포에 빠졌을 때 ‘담담하게’ 매수하는 역발상 투자를 선호한다. 그는 2008년 부호 1위에 오른 적 있다. 금융위기로 시장이 무너질 때 골드만삭스와 GE에 50억달러씩 투자해 큰 수익을 거둔 덕분이다. 그는 이 시기“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을 부려야 한다”는 원칙을 증명해 보였다.
버핏 회장은 주식 투자의 기본을 강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주식을 산다는 건 기업의 주인이 된다(Owning)는 의미”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당신이 주식을 살 때, 전체 회사를 사는 것처럼 행동하라”며 단기 수익보다 기업의 장기 가치에 집중하라고 했다. 버핏이 주주를 ‘파트너’라고 부르며 적극 소통하는 이유다.
이 밖에도 그는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 이사회는 단순한 거수기가 아닌 감시자이자 조언자가 돼야 한다는 점, 경영진에게 스톡옵션을 과도하게 지급하면 주주 이익과 괴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해하지 못할 비즈니스에는 절대 투자하지 말라”는 말도 전 세계 투자자에게 회자되는 철학이다.
버핏 회장의 투자 방식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블룸버그는 버핏이 독점 기업을 좋아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1등만 선택하는 투자로 시장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버핏은 코카콜라나 애플처럼 사실상 독점하는 회사 위주로 투자해왔다. 수많은 투자자를 부자로 만들기는 했지만, 미국이나 세계 전체로 봤을 때 바람직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 세계 최고의 투자자로서 진정한 기술 혁신이나 기후 위기 대응 등에서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는 점이 언급되기도 한다.
버핏 후계자는 캐나다 ‘흙수저’ 출신
경이로운 실적 이어갈 가능성 낮아
버핏 회장 후계자인 에이블 부회장은 캐나다 출신 ‘흙수저’다. 버핏 회장은 지난 2월 주주 서한에서 그의 오랜 투자 동반자이자 단짝이었던 故 찰리 멍거에 에이블 부회장을 빗댔다. “찰리처럼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며 버크셔의 가치투자 문화를 잘 이어갈 것을 기대한다는 뜻을 담았다. 버핏 회장은 2021년 에이블 부회장을 후임으로 공식 지목했고, 이후 수차례 후계 구도를 명확히 했다.
그는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의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빈 병을 줍고 소화기에 소화 용액을 채우는 일을 하며 노동의 가치를 배웠다. 연방하원에서 4선 의원을 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잡화점에서 일하고 신문 배달을 하며 스스로 투자자금을 모았던 버핏 회장의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한다.
앨버타대 졸업 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1992년에 당시 직원 500명 정도 소규모 전력 회사였던 칼에너지로 이직했고, 1999년 이 회사가 버크셔에 인수돼 미드아메리칸에너지(현재는 버크셔해서웨이에너지)로 바뀌며 버핏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8년 미드아메리칸에너지 CEO에 올랐고, 2018년 버크셔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벌링턴노던샌타페이(BNSF) 철도 등 버크셔의 주요 제조·소매 자회사를 총괄해왔다. 2021년 후계자 발탁 당시 WSJ는 에이블을 “빈틈없는 해결사”라고 평가했다. 버핏과 달리 공개적으로 나서는 성향은 아니지만, 더 직접 경영에 관여할 것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AP는 다만 그가 버핏에 필적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짚었다. 버핏은 수십년간 적절한 시점에서 투자를 단행해 버크셔를 성장시켜왔지만, 지금의 버크셔는 과거와 같은 수익률을 내기가 어려울 만큼 덩치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대표 가치투자자로 ‘워런 버핏 바이블 2021’ 저서에 참여한 최준철 VIP투자자산운용 대표는 “버핏 회장이 CEO에서 물러나지만 회장직을 유지하기 때문에 여전히 영향력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그는 “마이클 조던 없는 시카고 불스처럼, 버크셔 주주 입장에서는 버핏 없는 버크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주총에서는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후계자를 명확히 하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버핏 회장이 버크셔 주식을 단 한 주도 팔지 않겠다고 강조한 점도 후계 구조를 탄탄히 만들기 위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최 대표 역시 버크셔가 과거와 같은 경이로운 수익률을 내기는 어렵다고 봤다. 실제 천문학적인 수익률은 버크셔 규모가 크지 않았을 때 거뒀고, 최근 주가는 S&P 정도에 머무른다. 덩치가 커진 만큼 앞으로도 극적인 수익률을 내기란 만만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최 대표는 “다만 펀드가 아닌 자회사 구조라 매출이나 이익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듯 보인다”면서도 “지금과 같은 지주회사 구조가 맞는지, 행동주의 펀드의 도전은 없을지, 버핏 회장의 이사회 의장직을 아들인 하워드 버핏이 승계했을 때 새로운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지 등이 관전 포인트”라고 짚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0호 (2025.05.21~2025.05.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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