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3.19 21:00:00
구자은 LS그룹 회장 발언 파장이 확산되면서 재계가 시끌시끌하다. LS그룹이 주요 비상장 계열사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가운데 구 회장이 “중복 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상장 후 주식을 안 사면 된다”고 밝히면서 개미 투자자 반발이 거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 여파로 재계 전반이 움츠러든 가운데서도, LS그룹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전력 인프라, 전선 사업이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대규모 자금 조달을 위해 IPO 추진 당위성을 강조한 구 회장 발언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고심이 큰 모습이다. LS그룹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구자은 회장은 최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 행사에서 취재진에게 중복 상장 우려에 대한 질문을 받자 “투자하려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방법이 제한적이지 않으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작은 회사들이 성장하려면 계속해서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통신이든 권선이든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다. 중복 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상장 후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권선은 변압기나 모터 등 전자장치에 감는 피복 구리선을 의미한다.
실제로 LS그룹은 LS일렉트릭 자회사인 KOC전기, 미국 권선 자회사 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상장 심사를 철회했던 LS이링크도 올해 IPO 재도전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LS이링크는 ㈜LS가 지분 50%를 보유한 회사다. 상장을 추진 중인 LS MnM 역시 ㈜LS 자회사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 상장이 불가피하다는 구 회장 발언은 곧장 투자자들을 자극했다. LS그룹 계열사 주주토론방에는 “주가는 CEO 한마디가 이렇게 중요하다” “주주를 무시하는 행태” 등 구 회장 발언을 성토하는 게시글이 잇따랐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중복 상장으로 기존 상장사 가치가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다는 게 투자자들 판단이다.
논란이 커지자 LS 측은 “IPO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전력 시장이 활황이라 투자 재원 확보, 적기 시장 진출 목적뿐 아니라 결국 모기업과 자회사의 기업가치를 키우려는 노력”이라고 해명했다. 기존 회사 사업부를 따로 떼어 상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인수한 회사를 상장하는 것이라 그동안 문제 됐던 중복 상장과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LS 관계자는 “미국 권선 1위 기업인 에식스솔루션의 경우 LS그룹이 인수한 뒤 상장폐지 후 재상장하는 회사다. 미국 전력 시장이 활황이라 나스닥에 상장할 수도 있지만 국내 상장으로 선회해 국내 투자자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인데, 중복 상장으로 오해하다 보니 답답한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덧붙였다.
LS그룹 SWOT 분석해보니
중복 상장 논란에 휘말린 LS그룹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LS그룹은 2003년 LG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20여년간 LS일렉트릭, LS전선, LS MnM 등 주력 계열사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2003년 3480억원에 불과했던 LS그룹 영업이익은 2022년 1조원을 돌파했다. 지주사 ㈜LS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024년 처음 1조원을 넘겼다. 2024년 ㈜LS 매출은 27조5454억원, 영업이익은 1조74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13%, 19% 늘었다.
최근 LS그룹은 경영 환경 변화와 맞물려 여러 면에서 주목받는다.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전력 인프라 수요가 늘자 LS그룹은 전력 관련 사업에서 수직계열화 체제를 갖췄다는 점에서 존재감을 보인다. LS그룹은 전력 인프라, 전선, 반도체 부품과 배터리(2차전지) 관련 산업 등을 해왔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비상장 계열사가 줄줄이 상장할 채비를 갖추자 시장 일각에선 모자회사 중복 상장에 따른 지주사 기업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LS그룹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 등 SWOT 요인을 분석한다.
1. Strength 강점
탄탄한 수직계열화
LS그룹 강점은 전력·소재·배터리·에너지 인프라 등 상호 연관성 높은 사업을 중심으로 원재료부터 최종 제품까지 수직계열화(Value Chain Integration)를 일군 점이다. 크게 전기동(구리) → 전선 제조
→ 전력망 구축 → 전력 자동화 → 에너지 저장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체제다. LS MnM은 LS전선에 주요 원자재(구리)를 공급한다. LS전선은 LS MnM 전기동을 활용해 전력·통신 케이블을 만든다. 원자재 공급망 내재화를 통한 생산 비용 절감과 가격 변동 리스크 헤지 등 전략적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
LS전선과 LS일렉트릭 역시 연관성 높은 산업군을 중심으로 시너지를 키운다.
LS전선이 생산한 초고압 전력선(송전선)은 LS일렉트릭의 전력 자동화 시스템과 연결된다. LS일렉트릭은 스마트그리드·변전 시스템을 구축하며 이를 LS전선 제품과 통합해 전력 인프라 수주를 노린다. LS MnM과 LS이링크는 전기차 배터리·ESS(에너지 저장) 산업에서 연계성이 높다. LS MnM은 배터리 재료(니켈·코발트 등),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운영한다. LS이링크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관련 사업을 벌인다.
이 같은 수직계열화 체제는 미국·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전선·전력산업 수주 경쟁력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다. 전력 인프라·전선·배터리·신재생에너지 등 주요 사업을 계열사 간 유기적으로 연결해 원가 절감·효율성 증가, 계열사 간 협업에 따른 프로젝트 일정 단축, 유연한 대응력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설계부터 시공까지 일괄 제공하는 ‘턴키’ 수주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LS그룹이 수직계열화된 공급망을 지렛대 삼아 국내외 대형 전력·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서 턴키 수주를 따낸 사례도 적지 않다. 이집트 카이로 모노레일 구축 사업(전력망 및 배전 시스템 공급)에서는 LS일렉트릭과 LS전선 등이, 미국 블루오벌 SK 배터리 파크(Blue Oval SK Battery Park) 배전 시스템 공급 때는 LS일렉트릭과 LS MnM 등이 협업해 수주를 따냈다.
2. Weakness 약점
대규모 설비투자 쳇바퀴
LS그룹은 대규모 설비투자(CAPEX)가 필수적인 계열사를 줄줄이 두고 있다. 설비투자 노출도가 높은 산업군에서는 장기적으로 ‘이익 레버리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재무적 부담, 투자 회수 기간 장기화, 기술 불확실성 등은 약점으로 지목된다.
2030년까지 LS그룹은 전기차, 전력 인프라 등 신규 사업에만 20조원 이상 쏟아붓는다. 이는 LS그룹의 최근 3년 연평균 설비투자(약 5000억원)를 훌쩍 웃도는 규모다. 설비투자가 집중된 계열사는 LS MnM(전기동 제련), LS전선(케이블 생산라인), LS일렉트릭(전력기기 제조), LS이링크(배터리 시스템) 등이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수인 산업에서는 투자 회수 기간 장기화에 따른 자본 지출 부담이 피할 수 없는 약점으로 손꼽힌다. 가령, LS전선은 신규 해저케이블 공장 투자 비용으로 8000억원을 쏟아붓고 예상 회수 기간을 12년으로 잡았다. LS MnM은 배터리 리사이클링에 5200억원을 투자하고 예상 회수 기간을 10년으로 추정했다. LS일렉트릭 역시 스마트그리드 투자 비용으로 3500억원을 쓰고 회수 기간을 8년으로 봤다.
다만, 전력·전선·배터리·신재생에너지 산업은 글로벌 경기 사이클 의존도가 높다.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면 관련 인프라 투자 위축으로 프로젝트 자체가 연기되거나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투자 회수가 지연될 수 있고 경기 악화 땐 미수금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설비투자 산업에서는 기술 불확실성 극복이 난제로 지목된다. 특히 전력·전선·배터리 시장에서는 기술 혁신이 연속적이지 않은 특성을 보인다. 설비투자 시점에 예상했던 기술 발전 경로가 이후 불연속적 발전 패턴을 보일 경우, 투자금을 회수하기도 전 기존 기술은 ‘레거시’ 즉 낡은 기술로 전락해 감가상각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 가령, 배터리 산업에서 기술 헤게모니가 전고체 배터리로 넘어갈 경우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설비투자는 상당 기간 회수가 힘든 식이다.
특히 LS그룹은 ‘양손잡이 조직 경영’을 강조한다. 이는 ‘한 손(기존 조직)’으로는 주력 사업을, ‘다른 손(신규 조직)’으로는 신사업을 벌이는 조직 형태를 뜻한다. 다만, LS그룹의 경우 대부분 사업 포트폴리오가 지속적인 설비투자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양손잡이 조직 구현의 난도가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사업 영역에서 현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지속하면서, 여기서 나온 현금흐름으로 신사업 투자도 공격적으로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LS그룹 지배구조와 맞물려 중복 상장 논란을 초래한 배경으로도 지적된다. LS그룹은 전력·전선·배터리 산업에서 대규모 설비투자를 지속적으로 벌여야 하며 이는 자본 조달 압박을 가중시킨다.
LS그룹은 대규모 설비투자 부담을 낮추면서도 차입 등을 통한 재무구조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자금 조달을 추진 중이다. LS MnM 등 비상장 계열사를 상장시키면 오너 일가는 지주사 ㈜LS를 통해 일정 지분율을 유지하며 간접적으로 그룹 전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LS그룹을 포함한 국내 대기업집단은 이미 기존 계열사가 상장된 가운데 지배구조 정비를 위한 지주사 전환에 나서 작금의 ‘모자회사 동시 상장’ 구조가 초래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중복 상장은 기존 주주 지분 희석, 실적 이중 집계에 따른 지주사 저평가 초래, 투자자 신뢰 저하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다수 전문가는 지적한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메타 등 설비투자가 필요한 미국 주요 기업은 자회사 상장 없이 모회사 내부 자금 지원, 모회사 신용을 통한 외부 차입, 자회사 자체 현금흐름 활용, 전략적 파트너십·합작 투자 등 자금 조달 구조를 다변화해 자회사 상장 없이도 설비투자 재원 마련에 무리가 없는 것과는 대비를 이룬다.
3. Opportunities 기회
커지는 AI 시장·美 관세 정책 수혜
미국 등 북미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상당한 가운데 미국 내수 설비투자가 본격화되면 LS그룹에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급증하는 분위기다. 장거리 송배전 설비 설치, 고용량 전력망 설치, 시스템 현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송배전망 대부분은 1950~1960년대에 지어졌고, 미국 전력 송전망과 발전소 변압기의 70%가 설치된 지 25년이 넘어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중 갈등 여파로 미국이 탈중국 공급망 정책을 펼치면서 중국산 변압기가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대신 품질이 좋고 가격 경쟁력 있는 한국산 변압기 인기가 높아지면서 LS일렉트릭을 비롯한 국내 전력 인프라 업체들이 수혜를 누리는 중이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이 커지고 전력 소비량이 높은 데이터센터 관련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력기기 수주 물량은 넘쳐난다. AI 시스템을 가동하려면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이 필수다. AI 반도체 칩이 많은 전력을 쓰는 만큼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20배가량 높은 변압기 용량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LS그룹이 강점을 보유한 초고압 변압기, 배전반 등 전력 인프라, 시스템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규모 AI 투자 계획인 ‘스타게이트(Stargate)’를 직접 발표하면서 전력 수요는 전망치보다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스타게이트는 향후 4년 동안 5000억달러(약 730조원)를 투자해 텍사스주를 시작으로 총 16개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발전소를 짓는 AI 인프라 확충 프로젝트다. 오픈AI가 프로젝트 총괄과 AI 기술 개발을 맡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자금 조달을, 오라클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기술 등 인프라 구축을 책임진다. MS, 엔비디아, ARM 등도 협력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로 매년 일본의 한 해 수요에 맞먹는 규모의 전력이 필요해지는 만큼, 전기를 운반하고 알맞게 공급해주는 송배전 제품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변압기와 배전반 설비 등 전력 관련 사업에서 수직계열화를 이룬 LS그룹 수혜를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LS일렉트릭은 이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만든 AI 서비스 기업 xAI에 배전반을 납품하고 있으며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과도 협의 중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 중 한 곳과 연간 3000억~4000억원 규모의 배전반 납품 계약을 최종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은다.
한편, AI 데이터센터 확충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 해저케이블 시장 규모 또한 커질 것이란 기대도 크다. 업계는 올 한 해만 해도 미국 내에서 2303㎞의 해저케이블 부족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해저케이블은 LS전선이 두각을 드러내는 영역이다.
해저케이블 사업은 기술력과 자본이 모두 필수라 진입장벽이 높다. 심해 지역에서는 수압과 온도 변화 등 극한의 환경 조건을 극복해야 하는 만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유지보수 과정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LS전선은 국내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점유율 1위이고, 세계 시장에서도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프랑스 넥상스, 독일 NKT 등 쟁쟁한 업체들과 경쟁 구도를 이룬다. 특히 LS전선은 유럽과 일본에서만 보유했던 전압형 HVDC(고압직류송전) 기술을 최근 상용화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도가 더욱 높아졌다.
최관순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내 공장 증설로 전력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 대규모 전력 인프라 수요도 함께 증가할 것이다. 변압기, 해저케이블 등 LS 주요 계열사에 우호적인 영업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LS그룹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각국을 상대로 선포한 관세 정책 역시 호재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 의도대로 미국에 생산 공장을 세우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전력기기를 공급할 기회도 함께 늘기 때문이다.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은 지난 2월 ‘일렉스코리아 2025’에 참석해 “미국 의존도가 높은 회사들이 현지에 공장을 지으려는 움직임이 늘었다”며 “관세 정책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4. Threats 위협
널뛰는 원자잿값·환율 변수
반면, 관세 정책이 도리어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LS그룹 제품이 한국에서 생산돼 수출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실제 관세가 높아지면 기대했던 것보다 수혜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우선 LS그룹 수주 물량이 늘면서 원재료비 부담도 커진 점이 변수다. LS전선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전기동(구리) 등 주요 원재료 매입비로 전년보다 10% 늘어난 2조8527억원을 지출했다. 전기동은 LS전선 전체 생산 원재료비의 약 6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2023년 기준 t당 8430달러였던 구리의 연평균 가격이 지난해 9144달러까지 오른 영향이다.
물론 수직계열화 체제를 갖춘 LS그룹은 이 같은 변동성에 아주 큰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 구리 가격 상승은 통상 제련 업체에 호재로 여겨진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만큼 제품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다.
LS그룹 계열사 가운데 LS MnM은 구리 가격이 오를수록 실적이 좋아진다. LS MnM은 구리를 제련해 전선 재료가 되는 전기동을 만들고 LS전선은 이 전기동으로 전선을 만든다. 얼핏 LS전선의 경우 원가 부담이 커질 듯싶지만 따져보면 큰 영향은 없다. 이들 회사는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거나 원자재 선물 거래 등을 통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편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판매가에 반영하는 ‘에스컬레이션’ 조항을 적용해 기존 재고도 현재 구릿값 상승분만큼 이득을 보는 구조다. 즉, 원재료 부담보다 판가 상승이 더 커 구리 가격 상승은 LS전선에도 호재로 작용한다.
다만 미국의 관세 조치로 구릿값 변동성이 커지면 안정적인 수급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구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더 많아졌는데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제구리연구그룹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은 크게 늘지 않았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남미 칠레의 2023년 생산량이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호주와 콩고 등에서도 구리 광산이 폐쇄되거나 생산량이 축소됐다. 중국 내 제련소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LS그룹에는 급변하는 원·달러 환율도 고민거리다. ㈜LS가 자회사들의 실적 개선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겼는데도 순이익은 되레 30% 이상 감소한 것도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LS MnM이 환율에 휘청한 탓이다. 외화 관련 파생상품 손실 탓에 LS MnM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대비 60.3% 감소한 732억원을 기록했다.
오너 3세 후계 경쟁 격화
구본혁·본규·동휘 경쟁…계열 분리 가능성도
LS그룹이 시끄러운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다음 리더를 꼽는 후계 구도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 임기가 2030년인 만큼 아직 시간은 꽤 남았지만, 벌써부터 차기 총수 후보 간 경쟁 구도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LS그룹 역사는 계열 분리에서 시작됐다. LS그룹 모태는 LG산전, LG전선, LG-니꼬동제련이다. 2003년 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셋째)·평회(넷째)·두회(다섯째) ‘태·평·두’ 삼 형제가 계열 분리해 LG전선그룹(현 LS그룹)을 만들었다. 삼 형제는 친족 간 경영 분쟁 가능성을 막고자 승계 원칙부터 합의했다. 삼 형제의 장남이 순차적으로 회장을 맡는 사촌 경영 체제가 확립됐다. 사촌 경영과 장자 승계를 합친 셈이다. 이에 따라 2004년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홍 회장이 취임했다. 故 구자홍 회장은 2012년까지 그룹을 이끈 후 2013년 구자열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줬다. 구자열 회장은 9년 동안 회장직을 맡은 뒤 2022년 구자은 현 회장에게 넘겼다. 구자은 회장은 구두회 명예회장의 1남 3녀 중 장남이다.
2030년까지 그룹을 이끌 구자은 회장은 오너 2세대의 마지막 총수직을 수행 중이다. 5년이라는 기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재계에선 차기 회장 자리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다.
오너 3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구본혁 예스코홀딩스 부회장이다. 1977년생으로 차기 총수 후보 중 가장 연장자이자 승진도 빠르다. 오너 3세 중 처음으로 부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구본혁 부회장은 구태회 명예회장 3남인 故 구자명 LS MnM 전 회장의 장남이다.
구본혁 부회장은 2020년부터 예스코홀딩스를 이끌어왔다. 특히 투자형 지주회사로 성공적 전환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스코홀딩스는 도시가스 사업을 하는 예스코 등을 자회사로 둔 순수 지주사였으나 2021년 구본혁 사장이 대표이사로 부임한 이후 본업에 ‘투자’를 추가했다.
이후 예스코홀딩스는 대신증권과 맥쿼리한국인프라, 우리금융지주 등에 지분 투자해 배당금수익을 확보해왔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연간 배당금수익은 253억원에 달한다. 예스코홀딩스는 구본혁 부회장 주도 아래 2030년 자산운용 규모 1조원, 기업가치 1조원 달성을 목표로 중장기 성장 전략을 추진 중이다.
LS MnM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구동휘 부사장도 유력한 LS그룹 차기 총수 후보다. 1982년생으로 구자열 LS이사회 의장의 장남이다. 2023년 12월 LS MnM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됐고 1년 뒤 CEO로 승진했다. 구동휘 부사장이 이끄는 LS MnM은 LS그룹 신성장동력의 핵심이다. LS그룹은 배터리·전기차·반도체를 새 먹거리로 삼고 있는데, LS MnM은 2차전지 양극재 소재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IPO까지 추진해 구동휘 부사장의 경영 능력 시험대가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동휘 부사장은 지분율 경쟁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구동휘 부사장이 보유한 LS 주식 수는 96만2500주(2.9%)다. 지분율만 놓고 보면 구본혁 부회장(1.2%)과 구본규 LS전선 사장(1.1%)보다 높다.
구본규 LS전선 사장도 유력한 차기 총수 후보다. 구태회 명예회장 차남인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남이다. 1979년생으로 미국 퍼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 LS전선 미국법인에 입사한 후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2010년 LS일렉트릭 자동화 아시아퍼시픽 영업팀장, 2019년 LS엠트론 경영관리 최고운영책임자(COO), 2021년 LS엠트론 CEO를 거쳤다. 이후 LS엠트론 성과를 인정받아 2022년 초 그룹 핵심 계열사 LS전선의 CEO(부사장)를 맡았다. 그해 말에는 사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일각에선 계열 분리 가능성도 점친다. 재계는 오래전부터 ㈜LS와 E1, 예스코홀딩스 등 각 지주사 중심 계열 분리 시나리오를 그려왔다. 계열 분리를 점치는 가장 큰 근거 중 하나는 ‘흔들린 원칙’이다. LS그룹 승계 원칙은 사촌 경영과 장자 승계다. 원칙대로라면 구태회 명예회장 손자이자 구자홍 회장 장남인 구본웅 스톡팜로드 공동 창업자에게 힘이 실려야 맞다. 그러나 구본웅 씨가 LS그룹 지분을 정리하고 독자적 사업을 펼치면서, 기계적으로 경영권 승계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이 때문에 남은 3세들이 후계 구도를 두고 경쟁 중인 상황이다.
문제는 경쟁 구도가 자칫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지분 관계는 복잡해지고 결속력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LS그룹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인척 간 합의가 필수지만, 합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익명을 원한 서울 소재 경영대학 교수는 “기본적으로 공동 경영이나 형제 경영을 이어온 대기업집단은 늘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며 “경영에 참여하는 친족이 늘어날수록 분쟁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예방할 방법 중 하나가 계열 분리”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LS그룹은 애초에 LG그룹에서 독립해 나온 곳인데, 계열 분리를 생각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3대 지주사 체제로 개편이 끝났다는 점도 계열 분리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LS그룹은 2018년 예스코홀딩스의 지주사 전환을 끝으로 LS와 E1, 예스코홀딩스 3개 지주사 체제를 확립했다. 각 지주사 간 직접적인 지분 관계도 없다. 오너 일가가 각 지주사 지분을 보유 중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구태회·구두회 명예회장 일가가 예스코그룹 지주사 격인 예스코홀딩스의 지분을, 구평회 명예회장 일가가 E1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LS와 E1, 예스코홀딩스그룹으로 나누는 방안을 점쳐 볼 수 있다. 연이은 계열사 IPO 역시 계열 분리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도 있다. 상장 이후 지분 스왑이나 매각 등을 통해 지주사별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예상에서다.
[김경민·배준희·정다운·최창원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1호 (2025.03.19~2025.03.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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